[제10회 LG배 세계기왕전] 건곤일척

〈제11보〉(157~172)=장고파(長考派)들은 대체로 초읽기에 강하다. 초에 몰려도 헤쳐나갈 자신이 있기 때문에 시간을 펑펑 쓰는 것이다. 그렇다곤 해도 승부의 고비 때 혼자만 초읽기에 쫓긴다는 것은 역시 큰 부담인 모양이다. 백이 ?에 늘고 157 때 158에 이은 장면. 초읽기 돌입과 동시에 두어진 이 점이 사실상의 패착이 됐다.
참고도를 보자. 백은 1로 움직여 무조건 상변을 챙겨야 했다. 이렇게 버텼더라면 흑도 아직 장담할 수 없는 국면이었다. 15 다음 A와 B를 맞봐 우변 백 석 점은 무사하다. 실전은 165까지, 중앙을 흑에게 내주는 동안 백은 살아있는 말이 1선으로 넘어간 데 불과하지 않은가. 창졸간에 벌어진 참극이었다.
168의 보강이 불가피할 때 마침내 169. 우려했던 좌변 일대에 폭격이 시작됐다. 170은 자체로는 ‘가’로 빠져 넘는 수를 보는 게 옳지만 선수를 갖겠다는 뜻(백 ‘가’면 흑은 손을 뺀다). 백은 172란 마지막 카드를 뽑고 나섰다. 건곤일척(乾坤一擲). 이때 흑에게서 승착(勝着)이 등장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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