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데이', '무전유죄' 세상에 대한 절규

1988년은 서울올림픽의 해이기도 했지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절규가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각인됐던 한 해였다. 지강헌을 포함한 12명의 재소자들이 교도관의 총을 빼앗아 탈주한 전대미문의 사건. 비지스의 ‘홀리데이’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죄 지어도 돈 있으면 무죄, 돈 없으면 유죄”를 부르짖던 인질범. ‘홀리데이’(19일 개봉)는 그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에 무게중심을 두고 영화를 이끌어간다. 그 8박9일 간의 실화를 바탕으로.
절도범 지강혁(이성재)은 판자촌 철거현장에서 눈이 뒤집힌다. 친동생처럼 아끼는 장애인 주환이 반대시위 도중 경찰 안석(최민수)의 총에 맞아 죽기 때문이다. 죄를 지은 강혁이 수감된 교도소에 새 부소장이 부임한다. 공교롭게도 다시 안석이다. ‘악한 공권력’의 상징인 부소장은 사사건건 그를 괴롭히고, 강혁은 마침내 동료들과 탈주를 감행한다.
‘홀리데이’는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배우들의 연기도 성실한 편이다. 마지막 경찰과의 대치장면에서 혼절할 듯 절규하는 이성재의 열연에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선악 대립구도와 눈물과 분노로 점철된 감정의 과잉이 이 영화의 선의를 갉아먹는다.
‘지강헌 다큐’가 아닌 상업영화로서 이 지점은 상당한 아쉬움이다. 결정적인 순간에서 오히려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강도 피해를 입는 집주인이 지강혁 일당과 어울려 소주 파티를 벌이고, 인질로 잡힌 소녀가 인질범에게 과일을 권하는 장면은 실제 여부와 상관없이 영화 속에서 그리 설득력있게 보이지 않는다. 또 허구의 캐릭터로 창조된 안석 역의 최민수는 영화 초반 긴장감과 활력을 불어넣지만 중반 이후 감정적으로 폭주(暴走)하면서, 현실 공간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악의 화신’으로만 일관한다. 교도소 부소장이 현장 진압작전을 사실상 지휘한다는 설정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