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산책] 남는 건 추억뿐일지라도…

보고 싶은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연말에는 어쩔 수 없이 극장에서 먼저 볼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를 분류하게 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스펙터클’이 빠진 로맨스 드라마는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향이 있다. 이런 식으로 극장에서 놓치게 되었을 법한 범상치 않은 2편의 사랑 영화가 있는데, 물론 DVD에서도 놓치기는 아까운 작품들이다.
이터널 선샤인 짐 캐리가 생애 최고 연기를 보여줬다고 평가되지만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존 말코비치 되기’란 작품으로 유명해진 찰리 카우프먼이란 시나리오 작가다. 전작에서 보여준 상상력들, 예컨대 실존 배우의 머리 속에 들어간다거나, 이 영화로 인해 성공한 작가 자신이 다음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설정 등은 평범한 영화에 찌든 많은 이들을 열광시켰다.
‘이터널 선샤인’에서 카우프먼은 고통스런 기억을 삭제해 주는 라쿠나라는 회사를 SF적 요소 없이 등장시킨다. 실연의 아픔을 겪은 짐 캐리는 그 상처를 달래기 위해 이 회사를 방문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녀와의 추억을 삭제하는 과정에서 그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왜 아무리 사랑했던 연인들도 시간이 지나면 서로의 매력을 망각하게 되는 것일까. 영화를 지켜보면 여기에 대한 해답과 동시에 이를 극복하는 해법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영화 자체가 통째로 외워버리고 싶은 주옥같은 대사들로 넘치고 있고 부가 영상도 충실해 DVD의 소장가치는 높은 편이다.

날 미치게 하는 남자 미친 듯이 일을 해온 덕분에 잘 나가는 회사의 간부까지 승진한 드루 베리모어. 친절하고 재미있는 고등학교 수학 선생과 우연히 사랑에 빠지지만 친구들은 변태가 아니면 지금까지 그가 왜 결혼을 하지 못했겠냐고 억측한다.
사실 이 남자의 숨겨진 비밀은 변태가 아니라 보스턴 레드 삭스의 팬이라는 점. 문제는 보통의 팬이 아니라 레드 삭스의 경기 관람을 인생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광팬이라는 사실이다.
레드 삭스의 실제 팬이기도 한 감독 패럴리 형제는 ‘피버 피치’라는 영국 소설을 미국으로 옮겨와 야구와 일에 미쳐있는 두 남녀가 어떻게 서로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나가는지를 유쾌하게 담아냈다. 원작은 야구가 아닌 프리미어 리그 ‘아스날’을 좋아한 축구팬에 관한 이야기였으나 상당 부분 각색되었다. 또 촬영이 한창인 2004년에는 기적적으로 보스턴 레드 삭스가 밤비노의 저주를 풀고 우승하는 바람에 영화의 엔딩까지 수정해야 했는데 DVD에는 ‘또 다른 결말’이 보너스로 담겨 있다. 아울러 드루 베리모어의 깜찍한 모습을 볼 수 있는 NG 장면도 추천한다. (박진홍·DVD 프라임 대표 park@dvdprim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