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단 이창호' 탄생

제4회 LG배를 제패했던 중국 위빈(兪斌) 九단은 이창호를 가리켜 언젠가 ‘실력 13단’이라고 했다. 보통 9단들보다는 몇 계단 위란 뜻이었다. 17세기 일본 에도(江戶) 시대의 고수 도사쿠(道策)도 어찌나 싸움이 강한지 주위에서 ‘13단 실력’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10단 이상은 가공의 영역이다. 마치 바둑판 위에 존재하지 않는 ‘반 집’ 같은 것. 이창호(31)가 이번에 따낸 10단도 타이틀 이름일 뿐이지만, 어쨌건 첫 10단이 탄생했다는 점에서 반갑다. 22일 밤 한국기원 1층 바둑TV 스튜디오에서 벌어진 제1기 ‘원익배 10단전’ 결승 3국에서 그는 열 살 아래의 박영훈 九단을 백 불계로 제압, 2대1의 스코어로 대회를 끝냈다.
생애 128번째 우승으로 챙긴 전리품은 2500만원 정. 또 있다. 한국의 ‘첫 10단’ 자격으로 내달 16일 일본 타이틀 ‘십단전’ 보유자 조치훈과 ‘한·일 10단전’도 갖는다.
최종국은 중반까지 흑을 쥔 박영훈의 우세로 흘러갔으나 결정적 장면에서 백의 승부 감각이 빛났다. 상대가 맛을 아끼려 선수를 미루자 번개같이 역공, 대마를 잡아버린 것. 이로써 이창호는 지난해 당한 3연패의 빚을 갚으며 둘 간 통산전적을 다시 9승5패로 벌렸다. 국내 지배 영토도 전자랜드배 왕위 바둑왕에 이어 국내 4개로 늘었다. 신년 초 삼성화재배를 놓쳐 ‘사대취소(捨大取小)’ 격이 돼 버렸지만 국내 최다 지분(持分) 복귀는 값지다. 최근 왕성한 ‘타이틀 식욕’을 보여온 박영훈으로선 잠시 쉬어가는 정류장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