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극' 영상은 ‘와호장룡급’인데…

배우 장동건과 세계적인 감독 첸카이거(陳凱歌), 두 사람의 만남만으로도 화제를 불러모은 영화 무극(26일 개봉)의 교훈은 과유불급(過猶不及) 같다.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의 도전이라는 육중한 주제는 빈약한 스토리 라인에 기대어 비틀거리고, 구성과 영상에 준 여백의 미도 지나쳐 스크린이 숭숭 뚫린 듯한 느낌마저 준다. 과잉에서 비롯되는 불협화음 때문에 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음직한 몇몇 신에서 관객들은 실소(失笑)한다. 기대 역시 지나치면 아니 한 것만 못하다.
시체더미에서 찐빵을 꺼내 달아나던 어린 칭청(장백지)에게 운명의 여신(첸홍)이 다가간다. 그녀는 칭청에게 “절대미(美)를 누리지만, 한평생 사랑하는 사람과는 헤어져야 한다”고 슬픈 미래를 예언한다. 빛보다 빠른 발과 초인적인 힘을 지닌 설국 출신 노예 쿤룬(장동건)은 이민족과 싸우던 대장군 쿠앙민(사나다 히로유키)을 도와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다. 본국으로 돌아가던 쿠앙민은 숲에서 북공작(사정봉)이 보낸 자객 검은 늑대(리우예)의 습격으로 중상을 입는다. 쿤룬은 대장군의 붉은 갑옷을 대신 입고 황제를 구하러 성을 향했지만, 칭청을 인질 삼은 황제를 죽이고 만다. 쿤룬은 칭청을 한눈에 사랑하게 되지만, 대장군으로 오해 받고 사실을 털어놓지 못한다.

영화는 쿤룬이 과거를 알고 자신의 운명을 초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정작 그 과정은 그다지 도전적이지 못하다. 칭청을 두고 연적 관계가 되는 쿤룬과 대장군의 대립은 싱겁기 그지 없다. ‘의리의 노예’ 쿤룬은 주인 대장군의 명령에 복종할 뿐이지, 단 한번의 하극상도 감행하지 않는다. 북공작의 악랄한 성격이 어린 시절 칭청에게 입은 배신(그것도 빵 한 조각) 때문에 생겼다는 설정 역시 설득력을 불러 일으키기엔 무리다.
그래도 엉성한 얼개를 덮고 있는 유려한 영상만큼은 눈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 ‘와호장룡’의 촬영감독 피터 파우와 미술 감독 티미 입이 빚은 적(赤)과 녹(綠), 흑(黑)과 백(白)의 총천연색 파노라마는 구성에서 벌어진 이음새를 메워준다. 격투신에서 과잉 소비되는 CG가 최첨단 디지털 신기술로 매끈하게 대패질된 관객의 눈에는 옥의 티로 걸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군데군데 보이는 허점 탓에 한·중·일 삼국의 유명 배우들을 앞세워 할리우드를 정벌하겠다는 제작진의 계획은 버거워 보이지만, ‘배우 장동건’이라는 요소만은 성공한 듯하다. ‘세 살짜리 아이의 눈동자를 가졌다’는 첸카이거 감독의 칭찬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장동건의 눈빛은 사랑과 분노, 순수와 열정을 자유자재로 오간다.
3000만달러(약 300억원)의 제작비를 부은 대규모 다국적 프로젝트로 영화계의 무극을 점령하겠다는 감독의 의지는 과할지언정, 영화 내내 숨가쁘게 뛰고 날아다니는 장동건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만은 한계를 알 수 없는 무극(無極)의 경지에 오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