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놓치다' 느릿느릿, 주저주저… 사랑은 그런거야

‘사랑을 놓치다’(26일 개봉)는 용감하다. 인위적이고 자극적인 향신료로 가득한 로맨틱 코미디의 홍수 속에서, 이 영화는 일상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판타지를 심어줘도 관객이 미혹될까 말까 한 2006년 한국에서, 이렇게 순박하고 진득한 멜로라. 하지만 그 덕분에 천편일률을 벗어난 ‘사랑을 놓치다’는 오히려, 사랑스럽다. 설경구와 송윤아, 그리고 ‘마파도’를 연출한 추창민 감독이 빚어낸 사랑의 본질을 확인할 기회다.
1994년 여름, 만취한 대학 신입생 우재(설경구)는 소주인 줄 착각하고 간장을 입으로 들이붓는다. 그리고 아예 꺽꺽 소리까지 내며 운다. 옆에서 위로하는 사람은 대학 친구 연수(송윤아). 우재를 좋아하지만, 연수는 아직 그 사실을 고백한 적이 없다.

‘사랑을 놓치다’는 이런 식이다. 느끼는 순간 바로 표현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젊음들에게, ‘사랑을 놓치다’는 느림과 머뭇거림의 매력이 어떤 것인지를 강요하지 않고 전달한다. 면회를 간 전방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막차를 타지 않으려고 버둥대는 여자와 강제로 태워 보내는 남자. 사랑을 놓칠까 두려워하는 여자와, 놓치고 나서야 깨닫는 남자 사이에서 10년이 흐르고, 고등학교 조정부 코치와 동물병원 원장으로 재회한 그들은 다시 사랑의 감정을 더듬는다. 물론 이 지점에서도 추창민 감독은 해피엔딩이나 비극이라는 손쉬운 결정을 선택하지 않는다. 관객의 영화적 쾌감은 반감될 수 있겠지만, 그게 현실에서는 더 빈번하게 벌어지는 일이니까.
설경구의 멜로 연기는 이 배우의 연기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를 다시 한 번 보여준다. 감정의 과잉 없이 10년의 진폭을 장난기 가득한 표정과 몸짓으로 보여주는 그의 연기는 편안하고, 푸근하다. 이 영화로 스크린 데뷔한 이휘향의 ‘엄마 연기’와 넉살 좋은 장항선의 ‘아저씨 연기’ 역시, 이 영화의 신뢰감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으로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