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뒤뜰을 그리다 ‘빛나는 미(美) 독립영화’

미국 독립영화계는 풍부한 감성과 대담한 설정을 지닌 작품들을 내놓으며 ‘할리우드 영화’가 아닌 ‘미국 영화’의 또다른 가능성을 증명해왔다.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과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받은 ‘미 앤 유 앤 에브리원’(Me and you and everyone I know)은 지난해 미국 독립영화계가 거둔 최대 수확으로 꼽히는 작품.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소심한 어른들과 성적(性的) 일탈을 적극적으로 감행하는 아이들을 등장시켜 스산한 삶의 뒷뜰을 스케치하는 이 영화의 화술은 미국 독립영화의 전통을 그대로 잇는 부분이다.
노인을 위한 택시를 운전하면서 비디오 아티스트로도 활동하는 크리스틴(미란다 줄라이)은 신발 가게 점원 리처드(존 혹스)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이제 막 이혼을 당한 리처드는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 리처드의 두 아들 피터(마일즈 탐슨)와 로비(브랜든 래트클리프)는 각각 열네살과 여섯살에 불과하지만 컴퓨터 음란 채팅에 빠져 있다. 성적 호기심이 왕성한 소녀 헤더(나타샤 슬레이언)와 레베카(나자라 타운센드)는 누가 더 과감한지 테스트하기 위해 피터에게 기이한 제안을 한다. 40대 여성 낸시(트레이시 라이트)는 채팅 상대 로비를 섹시한 성인 남성으로 착각해 짜릿한 만남을 기대하며 약속 장소로 나간다.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은 빈센트 갈로의 ‘버팔로 66’이나 테리 즈위고프의 ‘판타스틱 소녀백서’ 같은 근래 미국 독립영화 수작들에 비하면 통찰력이나 짜임새가 부족하다. 강조하려는 메시지나 상징에 맞춰 장면들을 인위적으로 구성한 것 같은 느낌이 적지 않다. 하지만 기발한 에피소드들의 재미와 연필로 힘주어 꾹꾹 눌러쓰듯 매장면을 연출한 감독의 에너지 덕분에 강렬한 관람 경험을 안긴다. 내내 쓸쓸한 극중 풍경과 소박한 연기 스타일이 주는 인상과 달리 이 작품은 할 말이 너무 많은 사람이 만든 다변(多辯)의 영화다.
‘숏컷’이나 ‘매그놀리아’처럼 한 지역에서 살아가는 꽤 많은 캐릭터를 엮어나가는 이 영화에서 사람들은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은 꿈과 뻔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현실 사이에서 방황한다. 피터는 로비에게 수많은 점을 찍은 컴퓨터 출력물을 보여준 뒤 “하늘에서 내려다본 사람들의 모습이야. 요건 너, 이건 나야”라면서 점 두 개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누구나 희망과 좌절이 교차하는 저마다의 삶을 힘들게 살아가기 마련이지만, 저 먼 곳에서 무심히 바라보면 서로 구분할 수 없고 연결되기 어려운 점 하나하나에 불과하다는 것. 종횡무진 인물들 사이를 누비는 화려한 편집의 영화들이 오히려 소통의 단절을 말하곤 하는 역설이 흥미롭다.
그러나 감독은 종반부에서 새로운 사랑의 가능성을 예쁘게 암시한 뒤 서서히 떠오르는 해를 비춤으로써 ‘해피엔드’의 구두점을 찍는다. 어제가 어떤 하루였든, 오늘은 또다른 하루라는 것. 이 지루한 삶에서, 그래도 아직 열어젖히지 않은 시간만이 희망이다. 27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