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닭아, 새로운 이야기는 안되겠니?

코카콜라 병 만한 크기의 꼬마 병아리 ‘치킨 리틀’(목소리 잭 브라프). 우락부락한 프로레슬러 풍채의 건장한 아빠 닭과 달리, 치킨 리틀은 가진 재주도 별로 없고 또래들에게도 비웃음을 당하는, 한 마디로 별 볼일 없는 닭이다.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도토리를 맞고 “하늘이 무너진다”며 마을 유일의 비상 종(鐘)을 치는 실수를 저지른다. 이후 그를 따라다닌 별명은 ‘거짓말쟁이 양치기소년’. 1년이 지나 겨우 이 치욕을 극복하려는 순간, 다시 한 번 둔탁한 무언가가 머리를 내려친다. 이번에는 정말로 ‘하늘의 조각’이다. 치킨 리틀은 사실을 말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치킨 리틀’(26일 개봉)은 “디즈니를 발칵 뒤집은 3D 애니메이션의 혁명”이란 홍보문구를 사용 중이다. 어쩌면 이 자극적인 카피는 스스로의 위기의식에 대한 유력한 방증(傍證)일 것이다. 이 영화를 제작하던 당시, ‘치킨 리틀’ 제작사인 디즈니는 협력관계에 있던 ‘신흥 명가(名家)’ 픽사 스튜디오(‘토이 스토리’ ‘인크레더블’ 등)와의 계약 만료가 임박해 있었다. 전통의 디즈니는 몸이 달았고, 다급해진 이 ‘구 명가’는 역사 이래 처음으로 펜을 포기하고 3D 컴퓨터 프로그램을 클릭한 것이다.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디즈니는 변신 강박을 드러낸다. 아예 첫 대사부터 “옛날 옛날 한 옛날에, 말고, 다르게 좀 시작해보자”며 스스로의 오랜 전통을 부정한 뒤, “동화책 패러디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흑진주 같은 눈망울을 가진 캐릭터 치킨 리틀도 창의적인 매력을 가진 편이고, 우리의 주인공 ‘꼬마 닭’이 동물 친구들과의 야구게임에서 홈베이스를 밟는 순간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박진감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치킨 리틀’의 헐겁고 진부한 이야기는 디즈니의 이런 몇 가지 매력과 간절한 노력마저도 상당 부분 무위로 돌려버린다. 우주인의 지구침략을 빌미로 가족 간의 사랑을 회복한다는 내용은 디즈니는 물론 할리우드가 너무나 반복해서 우려먹었던 주제. 표현과 캐릭터의 개성에 감탄하다가도, 마지막에는 한숨을 내 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스스로의 한계를 깨달은(?) 때문일까. 디즈니는 지난 25일 픽사스튜디오와의 합병에 성공했다고 발표했고, 덕분에 관객은 당분간 ‘새로운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대한 기대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