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요리] 청국장찌개 & 느타리버섯전

18년 전에 나온 이태 선생의 소설 ‘남부군’ 맨 앞에 나오는 몇 장의 흑백사진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심설산행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사실 이 책을 읽고 그 내용을 곱씹으며 덕유산과 지리산을 직접 찾아 산행한 적도 있다.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맞아 죽는다는 게 빨치산의 운명이라는데, 심설산행을 하며 허기와 추위 때문에 고생하지 않은 등산인도 드물 것이고, 칼바람을 쉴 새 없이 맞으며 산행할 테니 빨치산의 운명과 산꾼들의 운명은 어쩌면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빨치산은 토벌대에게 쫓기고, 등산인들은 시간과 생업에 쫓겨 모두들 산으로 또 산으로 숨어드는 게 아닌가 싶다.

학교 다닐 때 데모 한 번 한 적 없는 우익 인생이지만, 눈 덮인 겨울 산에 들어갈 때마다 빨치산의 비장함이 느껴지는 걸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단지 그들은 추운 겨울 산에서도 소금 뿌린 밥이나 감자로 연명했지만, 우리 배낭 속에는 비장함을 즐거움으로 바꿔줄 맛있는 요리 재료가 들어 있다. 

청국장은 성인병 예방에 효험 높은 건강식

마침 전라도 지방에 큰 눈이 내렸다. 그 지방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지만 이번 겨울만큼은 지리산이나 덕유산 같은 심설이 유명한 남부지역의 심산을 찾아 제대로 된 눈 산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달에 준비한 산 요리는 전라도 향기가 물씬 나는 청국장찌개와 느타리버섯전을 준비해 보았다.

전라도 향기가 물씬 난다고 했지만, 청국장은 비단 전라도 음식만은 아니다. 충청도에서는 퉁퉁장, 경상도에는 담북장, 이북에서는 떼장이나 썩장으로 불려오고 있는 전 국민적인 음식이다. 단지 경험상 전라도, 특히 전라북도 진안에서 가장 맛있는 이것을 맛보았기에 그렇게 표현했을 뿐이다.

기록상으로도 청국장은 ‘시’란 이름으로 683년 삼국사기에 처음 등장한다. 신문왕이 왕비를 맞을 때 이것이 폐백 품목이었다는 것이다. 1715년 홍만선의 산림경제에 ‘전국장’이란 이름이 나오고, 이것이 ‘청국장’으로 음이 변형됐을 것으로 보는 게 통설이다. 따라서 이것은 적어도 1,400년 이상 된 우리나라의 전통식품임을 알 수 있다.

어느 계절에 먹어도 맛있는 게 이것이지만, 한겨울 시골집 아랫목에서 띄운 청국장이야말로 최고의 맛을 내기에 눈 덮인 요즈음에 맛보는 이것은 말 그대로 제철 음식이다. 특히 요리과정이 간단하고 적은 물로 조리할 수 있어 눈 덮인 심산에서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우선 코펠에 다진 김치와 돼지고기를 넣고 뚜껑을 덮은 다음 고기가 80% 정도 익을 때까지 중간 불에서 끓인다. 그 다음 코펠에 2/3 잠길 정도로 물을 부은 다음 다시 끓이다가 준비해온 청국장만 푹 떠서 넣으면 된다. 된장보다 잘 풀리기 때문에 몇 번 잘 저어주면 무리 없이 풀릴 것이다. 그런 다음 3~5분 정도 더 끓이다가 불에서 내리면 완성이다.

지역마다, 집안마다 들어가는 부재료와 만드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산에서 먹기에는 이 방법이 가장 쉽고 편리하다. 참고로 청국장은 된장과 달리 자체에 간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추가로 간을 해야 하는데, 경험상 소금으로 간하기보다 김치의 양을 조절해 맞추는 게 더 맛있는 것 같다. 이것이 어려우면 마지막에 소금으로 간하면 된다.

청국장 효능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정장 효과다. 변비나 설사는 장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인체의 신호다. 30g의 청국장을 섭취하면 300억 마리의 유익한 균을 먹게 된다. 또한 청국장의 레시틴과 사포닌은 혈액속의 과도한 지방을 흡수 배출해 비만을 막아주기도 한다.

이밖에도 청국장에는 제니스테인, 단백질 분해효소, 사포닌, 파이틱산과 같은 항암물질이 풍부해 암 예방효과도 있다. 바실루스 단백질 효소는 혈전용해 효과가 있어 중풍을 막아준다. 이렇듯 청국장의 섭취로 많은 성인병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찌개로 끓여 먹으면 미생물과 효소의 활성이 파괴되어 상기의 효과를 빠른 시간에 기대하기가 힘들다. 따라서 찌개를 끓일 때는 청국장을 넣은 후 너무 오래 끓이기보다 다른 재료를 모두 익힌 다음 청국장을 넣고 살짝 끓이는 게 영양학 상 좋다.

또한 청국장균은 대부분의 미생물들이 살지 못하는 영상 65℃ 이상의 고온에서도 포자를 형성하고 살아남고, 영하 70℃의 저온에서도 포자를 형성하고 생존한다. 따라서 아무리 추운 겨울에 요리해 먹어도 영양을 그대로 섭취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상온에서는 1주일 정도 보관이 가능한데, 흰 곰팡이가 끼었을 때는 먹어도 상관없지만, 푸른 곰팡이나 검은 곰팡이가 피었을 경우에는 먹지 않는 게 좋다.

빠른 시간에 조리 가능한 느타리버섯전

구수한 청국장이 준비됐으면 이번에는 느타리버섯전을 만들어 보자. 이것 또한 심설산행을 할 때 쉽고 간편하게 맛있는 요리를 해먹을 수 있는 방법이다. 우선 비닐봉투에 밀가루를 담은 다음 느타리버섯을 뜯어 넣고 흔들어 보자. 그러면 버섯이 흰색 옷을 입게 된다. 그런 다음 노란 계란에 넣고 살짝 흔든 다음 프라이팬에 올리면 된다.

고기보다 맛있다는 표현에 반문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맛있다. 원래 이 요리는 빙벽등반을 하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선배들을 위해 개발한 요리인데, 고기보다 빨리 익어 빠른 시간에 조리할 수 있는 재미있는 요리다.

느타리버섯은 항종양, 콜레스테롤 강하, 요추동통, 근육경련, 수족마비, 면역체계 강하 등에 효과가 있는 플루란(Pleuran) 성분이 들어 있으며, 이것에 들어 있는 영양성분은 자라나는 아이들이나 성인 누구에게나 탁월한 효과가 있다. 포식, 과식과 같은 식습관에 따라 칼로리 과잉섭취와 비만과 변비, 각종 고혈압, 당뇨 등의 성인병, 암 등을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 대부분의 버섯이 항암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듯이, 느타리버섯에는 직장암과 유방암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서 면역기능을 높여 암세포의 증식을 정지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심설산행을 하며 이것을 먹기 위해 계란을 보관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원래 귀한 음식이 맛있듯 산에서 먹는 계란요리는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만하다. 최근에는 5,000원 이내에서 구할 수 있는 계란 캐리어가 나와 있어 산에서도 어렵지 않게 계란요리를 즐길 수 있다.

예전에는 산에 가서 무엇을 해먹을지 고민거리였는데, 요즈음에는 어떻게 하면 산에 갈 수 있을까가 고민이다. 직장과 가정에도 충실하고 산에도 열심히 다니는 게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가고 싶은 산마다 흰 옷을 입고 기다리고 있지만, 마음대로 갈 수 없는 게 너무 아쉽다. 빨치산들이 정권에 버림받아 가고 싶은 고향에 가지 못하고 쓸쓸히 사라져 버린 것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이러다가 계속 늙어 산에 가고 싶어도 체력 때문에 가지 못할 일도 있을까?

바보 같이 넋두리를 늘어놓는 것보다는 신발장에 넣어둔 등산화에 왁스 한 번 더 칠하는 게 낫겠다.

글 한형석 한국산서회 회원 hshan@kolon.com
영양가 자문 김소영 영양사 ksy0946@hotmail.com
사진 유창우 기자 canyou@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