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산행] 아산 외암마을 장승제

▲ 아산 외암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 전날인 열 나흗날 오후 1시에 마을 입구에서 장승제를 지낸다.

정월 대보름은 우리 겨레의 ‘밝음 사상’을 반영하는 큰 명절이다. 이 날 치러지는 세시풍속 행사는 한 해에 있는 명절 행사의 20%에 이를 정도로 다양하다. 또한 정월 대보름은 개방적·집단적·수평적·적극적인 명절로서, 특성상 ‘나’에서 ‘우리’로 확장되는 마을 공동체 행사가 많다는 게 민속학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양력으로 생활하는 요즘엔 정월대보름 행사에 참가하려해도 주말이 아니라면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다. 마침 2006년 병술년 정월대보름날은 일요일인 2월12일이다. 때를 맞춰 이 날을 전후해 전국적으로 수많은 행사가 벌어지는데, 400년 전통의 민속마을인 아산 외암마을에서도 방문객을 초대해 장승제를 연다. 마침 외암마을 뒤쪽에 솟은 광덕산은 정상 조망이 빼어날 뿐만 아니라 겨울 가족산행지로도 더 없이 안전한 대상지다.

외암마을 장승제 전통마을에서 오곡밥 먹고 달집도 태우고 정월대보름 전날인 2월11일 오후1시에 행사 시작

“기와집과 초가가 조화를 이룬 전통 마을에서 정월 대보름 잔치를 즐겨보세요.”

▲ 마을의 액운을 쫓아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달집태우기.

정월 대보름이 되면 우리 땅은 들썩거린다.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마을공동제의로 동제(洞祭)를 지낸다. 정월대보름 하루 전날 외암마을에서 지내는 장승제 역시 마을의 액운을 막고 전염병을 물리치기 위하여 마을 수호신인 장승에게 지내는 동제다.

이 마을의 장승제는 작년까지만 해도 음력 정월 열나흗날 아침에 열렸으나 올해부터는 오후에 치러진다. 도시에서 참여하고자하는 일반 관광객들을 배려해서다. 즉 2006년 정월대보름 잔치는 양력 2월11일(토) 오후 1시쯤에 시작한다.

풍물패가 마을 돌며 흥 돋워

마을 입구의 외암민속관 근처의 장승에서 이런저런 준비를 마치고 나면 풍물패가 마을을 한 바퀴 돌면서 분위기를 슬슬 잡아나간다. 오후 2시 정각에 마을 노인의 주관으로 올리는 엄숙한 제례의식은 30분 정도면 끝나고, 이젠 외암마을을 찾은 관광객들 차례다. 외암마을 측에서는 관광객들도 장승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원하는 가족들은 장승 앞에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릴 수 있다. 이때 마을부녀회 회원들은 수백 년 묵은 아름드리 느티나무 아래로 자리를 옮겨 느티나무제를 따로 지낸다.

▲ 주산인 설화산을 등지고 평화롭게 자리 잡은 외암마을.

오후 3시에 풍물패가 다시 한번 흥을 돋우고 나면 본격적으로 정월대보름놀이가 시작된다. 마을 곳곳이 무대로 바뀐다. 연 만들어 날리기를 비롯해 투호·제기차기·썰매타기·떡메치기 등 다양한 민속놀이가 펼쳐진다. 연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서부터 인절미 재료까지 행사에 필요한 모든 것은 외암마을에서 준비한다. 썰매도 보통 때는 1대 빌리는 데 시간 제약 없이 1,000원씩 지불해야 하지만, 이 날만큼은 무료다. 떡메치기는 광덕산 인근에서 생산된 찹쌀과 콩가루를 원료로 하여 옛날부터 전통적으로 해왔던 방식 그대로 재현하여 인절미를 만든다. 당연히 누구나 공짜로 맛볼 수 있다.

▲ 외암마을 고샅길을 거닐며 마을 곳곳을 둘러보는 방문객들.

또 오곡밥·약식·귀밝이술·부럼·복쌈·진채식 등 예로부터 정월 대보름날에 만들어 먹는 별식을 ‘상원절식’이라 하는데, 외암마을측에서 방문객들에게 나눠준다. 역시 양은 많지 않지만 무료다. 결국 정월대보름 행사가 펼쳐지는 날은 주차료(1,000원)와 입장료(1,000원)만 지불하면 외암마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사를 공짜로 마음껏 참여할 수 있는 셈이다.

▲ 외암마을 입고. 한 쌍의 장승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 날은 그냥 맨손으로 오셔서 마음 편히 즐기시면 됩니다.”

외암마을의 농촌체험 운영대표 이규정씨(44)는 홍보 차원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라 자랑한다.

이런저런 흥겨운 놀이에 입도 즐겁고 마음도 들떠서 마을 골목길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덧 오후 5시간30분. 서산으로 해가 넘어갈 무렵 땅거미가 서서히 밀려들면 다시 한번 풍물패가 마을을 한 바퀴 돌면서 흥을 돋운다. 이 날 아산의 일몰시각은 오후 6시7분, 월출시각은 오후 4시9분이니, 해가 지기 전에 이미 하얀 달이 설화산 위로 두둥실 떠올라 있을 것이다.

▲ 외암마을 농촌체험 운영대표인 이규정씨.

그리고 어둠이 내린 오후 7시쯤에는 시냇가 옆 논에서는 쥐불놀이가 시작된다. 물론 아이들 위주지만, 아이에게 쥐불놀이 방법을 알려준다는 핑계를 대면 어른도 추억에 젖어들 수 있다. 쥐불놀이에 필요한 깡통과 나뭇가지 등은 당연히 준비되어 있다.

이어 둥근 달이 온 마을을 밝게 비출 때면 달집태우기를 한다. 산에 가서 잎이 붙은 푸른 소나무를 베어다 세우고, 그 주위에 가가호호 모아온 짚단을 세우고 새끼로 붙들어 매면 마치 노적처럼 생긴 달집이 완성된다. 달집에 불을 붙이면 사람들은 달집 둘레를 돌며 즐겁게 춤을 추고 환성을 지르며 한바탕 즐겁게 논다. 이 달집이 훨훨 잘 타야만 마을이 태평하고 풍년이 든다고 하며, 만일에 달집에 화기만 나고 도중에 불이 꺼지거나 잘 타지 않으면 마을에 액운이 들고 농사도 흉년이 든다고 믿고 있다.

▲ 얼어붙은 무논에서 썰매를 타는 아이들. 1대당 1천 원씩인데 장승제를 지내는 날이 무료다.

달집이 거의 타들어 가면 다시 한번 풍물패와 어우러진 잔치 한마당이 벌어지고 행사는 서서히 막을 내린다. 이때가 오후 9시쯤이다. 만약 외암마을 민박집에 숙소를 정했다면 서두를 필요 없이 달빛 드린 마을 고샅길을 구석구석을 돌아보면 된다. 이런 행사 중에 연엽주를 구입하거나 한 잔 마시는 것도 괜찮을 듯. 이 술은 외암마을 이참판댁에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 가주(家酒)로 고종에게도 진상했다고 한다. 그 동안 집안에서 제삿술로만 빚어 왔으나 요즘은 일반인들도 그 맛을 볼 수 있게 됐다.

이튿날인 대보름날은 행사가 없어 여느 때처럼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다만 연중 프로그램인 한지부채 꾸미기·모형곤충 만들기·아기솟대 만들기·다식 만들기·천연비누 만들기·황토염색 등의 프로그램은 진행한다. 참가비는 한 종목당 5,000원. 민박을 하지 않은 관광객도 당일 신청해서 참여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