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66배 올랐는데… 그래도 짜네

인상률 1만6666배. 우리나라 프로 기전(棋戰) 우승 상금이 지난 반세기 동안 엄청난 도약을 이루어 온 것으로 밝혀졌다.
국내 타이틀전의 효시인 국수전의 1956년 출범 당시 우승 상금은 3만환 정. 1962년의 화폐개혁을 감안하면 단돈 3000원에 해당한다. 이는 꼭 50년 뒤인 2006년 현재 국내 최고 상금 타이틀전인 GS칼텍스배 우승 상금 5000만원의 0.006%에 불과하다.
다른 품목과 비교해도 기전 우승 상금의 인상률은 꽤 높다. 같은 기준 연도를 비교할 때 쌀 한 가마(80㎏)는 1400환(140원)에서 15만5000원으로 1107배, 금 한 돈은 425환(42.5원)에서 6만9000원선으로 1642배 올랐을 뿐이다. 56년 최고급 담배 파랑새 한 갑 값은 50환(5원). 요즘 ‘에쎄’ 한 갑이 2500원이니 엄청 오르긴 했지만 인상률은 500배에 불과하다. 연탄 값은 339배 오르는 데 그쳤다.
자장면 값에 대입하면 프로 기전 규모의 가파른 상향 커브가 더 실감난다. 65년 자장면 166그릇 값에 불과하던 우승 상금은 75년엔 5700여 그릇, 85년엔 2만6000여 그릇의 구매력으로 커졌다. 요즘 최고 기전 우승 상금은 1만4000여 그릇 값으로 조정된 상태.
이 같은 사실은 전문 가격 조사기관인 ‘한국물가정보’의 분석을 통해 밝혀졌다. 사단법인체인 이 기관은 지난해부터 ‘물가정보배 프로기전’을 운영해올 만큼 친바둑적 업체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난 반세기 동안 ‘가장 행복해진’ 직업은 프로기사라고 해도 좋을까.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초창기 바둑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으로 워낙 낮은 액수에서 출발했기 때문. 신문사들이 “광고료 없이 무료로 기보를 실어주겠다”며 생색내던 당시 무적의 최강자로 군림했던 조남철(83) 九단은 그 무렵 우승 상금과 관련해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생활비로는 턱도 없었고, 대회 후 관계자들과 어울려 자축회 한 번 하기에 겨우 알맞은 금액이었다.”

무려 1만6000여 배가 올랐다지만 국내 프로 200여 명 중 연간 상금 30위권 기사의 수입은 아직도 3500만원(2005년)에 머물 만큼 대다수 기사들의 생활은 열악하다. 일본 최고 타이틀 기성(棋聖) 우승 상금(4200만엔)은 GS칼텍스배의 8배, 1인자 장쉬의 작년 수입(1억2300만엔)은 이창호(5억 630만원)의 2배가 각각 넘는다.
국내 ‘최고 기전’의 자리도 많은 변천을 겪었다.
66년 혁명적인(?) 우승 상금 10만원을 들고나온 왕위전은 이후 200만원(76년), 500만원(80년) 시대를 거쳐 85년엔 1600만원까지 인상했다. 이 액수는 89년 출범한 기성전의 2700만원에 의해 깨졌다. 98년엔 테크론배가 4000만원의 파격적 상금으로 선두에 나선 뒤 2003년부터 5000만원으로 증액했고, 명칭도 GS칼텍스배로 바꿔 지금에 이르고 있다.
자료를 정리한 한국물가정보 노승권 영업부장은 “사랑방 소일거리로 취급되던 한국 바둑이 당당한 문화상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세계 제패로 국위 선양까지 해낸 과정은 상금 변화 흐름과 밀접한 인과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분석했다. 상금의 가파른 증액과 바둑의 위상 제고가 상호 반응적으로 반세기 동안 이어져 왔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