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5일 아카데미 시상식] '작은 영화들의 큰 잔치'

상상력 빈곤과 허전한 곳간 때문에 우울한 할리우드에‘작은 영화’들이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 구체적 사례는 내달 5일 열리는 제78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 5편 중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뮌헨’(제작비 7000만달러)을 제외하면 대부분 평균 제작비 700만 달러 안팎의 ‘소품’. 하지만 모두 자기 몸집의 3~9배 가까운 수입을 올렸다.(표) 스필버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뮌헨’ 제작비면 작품상 후보에 오른 다른 네 작품을 모두 만들고, 그래도 돈이 남는다”면서 “아마도 각본상 후보에 오른 ‘오징어와 고래’ 정도는 하나 더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최근 할리우드의 고민은 ‘막대한 제작비와 줄고 있는 관객 수’.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공식 발표를 꺼리고 있지만, 영화 전문지인 버라이어티와 할리우드 리포터 등에 따르면 2004년 할리우드 영화 1편당 평균제작비는 무려 6360만 달러(약 630억 원·2005년 수치는 아직 미발표). 하지만 관객 수는 2003년 -3.7%, 2004년 -6.1%, 2005년 -7%로 3년 연속 감소했고, 2005년 총 수입도 지난해 보다 5% 하락한 89억 달러 수준이었다. 평균 12%에 달하는 입장료 인상과 연말 ‘해리포터와 불의 잔’ ‘나니아 연대기’ 등의 선전으로 어느 정도 손실액을 만회하기는 했지만, 할리우드 연간 수입액이 90억 달러에 못 미친 것은 2001년 이후 처음이다.
‘대마불사’라는 블록버스터(대작 상업영화)에 대한 할리우드의 신앙은 적지 않은 상처를 입은 게 사실이다.

단순히 ‘돈’ 문제를 떠나, ‘작은 영화’는 대중을 ‘환호하게 만드는’ 주제가 아니라 대중을 ‘고민하게 만드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더 문제적이다. 1950년대 매카시 상원의원의 권력남용에 맞선 저널리스트 머로의 열정을 그린 ‘굿 나잇 앤 굿 럭’(감독 조지 클루니), 미국의 아킬레스건인 인종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크래쉬’(감독 폴 해기스), 게이 로맨스라는 부담스러운 소재를 정면에서 묘사한 ‘브로크백 마운틴’(감독 이안), 작가 트루먼 카포테와 두 명의 살인범과의 관계를 그린 ‘카포테’(감독 베넷 밀러) 등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들은 하나같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를 제기하고 있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9·11테러와 이라크 전쟁을 거친 미국이 ‘영화를 통한 내부 성찰’을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있다”면서 “실제로 강력한 스펙터클의 대중영화나 보수적 휴머니즘에 집착하던 아카데미의 경향을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떠들썩한 춤과 노래로 관객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뮤지컬 형식의 ‘시카고’(2003년 작품상·제작비 4500만 달러), 거대한 스펙터클의 전쟁 서사극 ‘반지의 제왕’(2004년 작품상·〃 9400만 달러), 안락사와 대안적 부녀관계에 대한 휴머니즘 드라마 ‘밀리언달러 베이비’(2005년·〃 3000만 달러)등 최근 몇 년간 아카데미가 사랑했던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이 ‘작은 영화’들의 차별성은 더욱 도드라진다.
사실 지난 1세기 동안 상상력 고갈에 시달릴 때마다 위기의 할리우드를 구출했던 것은 외부로부터의 ‘수혈’과 ‘자기 갱신’. 최근에는 남미 등 비영어권 감독의 재능과 아시아 작품들의 리메이크에 빚져왔다. 중남미 출신 감독으로는 로베르토 로드리게스(멕시코·‘씬 시티’ ‘스파이키드’ 등),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멕시코·‘21그램’ ‘아모레스 페로스’ 등), 페르난도 메이렐레스(브라질·‘씨티 오브 갓’ ‘콘스탄트 가드너’ 등)의 활약이 대표적이며, 지난해에는 ‘링’ ‘주온’(미국명 ‘그러지’) 등 일본 공포영화의 리메이크 붐이 이어졌다.
그리고 2006년 할리우드는 스스로 ‘작은 영화’의 상상력 주사(注射)를 맞으며,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태풍’ ‘청연’ ‘야수’ 등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잇단 실패를 경험한 후, 대중들이 상대적으로 작은 영화인 ‘왕의 남자’의 성공에 더 열광하고 있는 한국의 현상과도 유사한 대목이 꽤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