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영화제 ‘참관기’
제56회 베를린 영화제가 시작된 9일에도, 어김없이 진눈깨비가 내렸다. 이 무렵의 베를린은 늘 스산하다. 그럼에도 19편이 오른 경쟁 부문은 물론 비경쟁 초청작들을 위한 ‘파노라마’, 젊은 감독들의 등용문인 ‘포럼’ 등 세가지 섹션의 상영작 상영관에는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퀴어영화제(동성애와 관련된 영화), 거장들의 회고전 등 다양한 행사가 11일간의 일정을 그 어느 때보다 촘촘히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제의 개막작은 연일 눈 내리는 지금 베를린의 풍경과 잘 어울리는 제목의 ‘스노 케이크(Snow Cake)’. 영국과 캐나다의 합작인 마크 에번스 감독의 ‘스노 케이크’는 사람들 사이의 만남과 성찰에 관한 영화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조그만 마을에 나타난 슬픈 눈의 이방인 알렉스(알만 릭맨 분). 그는 에너지로 충만한 19세의 비비안을 태워주지만,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 비비안이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비비안의 집으로 찾아간 알렉스는 자폐증상이 있는 비비안의 어머니 린다(시고니 위버 분)를 만나면서 딸을 잃었다는 분노와 슬픔을 전혀 보이지 않는 그녀만의 기묘한 순백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시고니 위버는 “린다의 자폐증은 장애가 아니라 재능”이라고 표현했다. 린다가 내리는 눈 속에서 춤을 추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비비안과 이별하는 장면은 영화의 정점이다. 낯선 곳, 낯선 세계와의 만남을 시종일관 과잉되지 않은 감정으로 풀어나간 이 영화에 대해 현지 평론은 찬반이 엇갈린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혼을 위한 최고의 음식” (슈피겔 온라인)부터 “ ‘레인맨’을 뛰어넘으려 했으나 ‘레인우먼’에 그치고 말았다” (디 벨트)는 평까지.
다른 삶의 방식을 인정하는 따뜻한 시선이나 주인공 알렉스가 구사하는 영국식 유머가 전반적으로 우호적인 평가를 얻어내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보다 강한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보여온 베를린 영화제의 개막작으로는 조금 약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경쟁부문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작품은 로버트 앨트먼 감독의 신작 ‘프레이리 홈 컴패니언’과 이미 금곰상을 거머쥔 바 있는 마이클 윈터보텀 감독의 ‘관타나모로 가는 길’.
(베를린=유현주·독일 훔볼트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