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LG배 세계기왕전]또 버티다

〈제7보〉(69~76)=구리는 올해 초 닷새 동안 무려 3개 대회를 제패했다. 1월 10일 중·일 아함 동산배 우승자 대결서 승리한 데 이어 12일 명인전, 14일 NEC배서 연거푸 정상에 선 것. 세계 바둑 사상 유례없는 대기록이다. 드넓은 땅덩이를 연일 옮겨 다니며 거둔 수확이어서 체력 면에서도 ‘철인’급 임이 입증됐다. 현재 중국 4관왕. 구리는 그러나 아직 이세돌처럼 세계 정상은 밟아보지 못했다.
69, 71로 두텁게 한 점을 따내자 백도 74까지 귀에서 사는 자세를 취했다. 69로 ‘가’에 붙여 강력하게 공격해가면 패(覇) 아닐까? 참고 1도를 보자. 부분적으론 12까지 패 형태지만 지금은 중앙 쪽에도 패 맛이 있다. A와 B의 ‘양패’로 백 대마는 온전하다는 의미다.
75 때 백도 어렵다. 우변을 적당히 갈라친다면 참고 2도처럼 구차한 삶을 감수해야 하는데 이른바 생불여사(生不如死). 76은 ‘나’로 단수 쳐 한 점 따내는 수와 ‘다’의 단점을 노리는, 이세돌다운 강인한 버팀수다. 흑이 그 약점을 보강하면 그 때 우변에 벌리겠다는 뜻. 구리의 숙고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