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과 국정본 대한극장 회장의 '인연'

영화는 사람이 만듭니다. 사람이 모여서 마음을 더하고, 그 마음이 관객들에게 전달될 때 바로 '대박'이 터지는 것이지요. 충무로엔 서로 손을 잡고 나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인연은 언제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줍니다. 숨겨진 인연을 소개하는 코너 '인연'을 신설, 그 만남의 온기를 지면으로 중계하겠습니다.(편집자 주) 이준익감독 88년부터 4년간 대한극장서 근무
"겸손하라는 국회장님 말씀 아직도 명심" 1000만 감독도 '고수' 앞에선 어린애였다. '왕의 남자'(제작 시네마 제니스)로 한국영화의 흥행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이준익 감독. 지난 21일 '실미도'를 제치고 한국영화 역대 흥행 성적 2위에 오른 날, 그는 혼나기에 바빴다. 10여년 전 '사수'로 모셨던 대한극장의 국정본 회장으로부터 '격려 반, 질타 반'의 말을 들어야 했던 것. 88년부터 4년여 간 대한극장에서 일을 했던 이준익 감독은 당시 국 회장을 통해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인생 밑거름이 될만한 가르침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지금도 종종 국 회장을 찾아뵙는다. 칭찬을 들을 때보다 혼날 때가 더 많은데, 매번 많은 것을 배운다"는 것. 이날도 국 회장의 애정어린 질타는 이어졌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여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더 겸손하게 관객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이 감독이 잘나서 1000만이 넘은 줄 아냐. 배급 시기가 기가 막혔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이 감독은 "너무 교과서적인 말씀이세요"라고 한마디 했다가, 괜히 '매'를 벌었다. 단일관이던 대한극장을 멀티플렉스로 과감히 바꾸는 등 끊임없는 리노베이션으로 대한극장을 오늘날 높은 좌석 점유율을 자랑하는, 젊은이들이 찾는 극장으로 만든 국 회장. 트렌드에 민감한 흥행 고수의 날카로운 지적이 이어졌다. "왜 보다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지 않느냐"는 것. "차기작 '라디오 스타' 준비 때문에 한동안 강원도에서 잠적 생활을 할까 한다"는 이 감독의 말을 단방에 '퉁'! "배우들을 독려해서 이럴 때 무대 인사 한번 하면 얼마나 좋으냐. 언론이나 관객은 냉정하다. 그들이 원할 때는 열일 제치고 나서야 한다"는 것. "그런 기록적인 스코어는 영화 외적인 요소에 힘입은 부분이 분명 더 크다. 시대 분위기를 잘 탄 덕분"이라고 평한 국 회장은 "이 감독이 또 이런 흥행 성적을 기록할 수 있다고 결코 자신하지 마라. 기회가 왔을 때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상업영화 감독이라면 관객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첫째도 관객, 둘째도 관객임을 명심하라"고 말했다. 국 회장이 이렇게 '질타'의 말을 서슴지 않은 이유는 이준익 감독을 무엇보다 아끼기 때문. "이 감독은 어린애처럼 맑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 결코 주머니에 돈을 넣고 다닐 수가 없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머리를 긁적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난 이 감독은 잔뜩 혼이 나고도 얼굴엔 미소가 가득. "이렇게 주위에서 아껴주시는 분들이 많은 덕분 아니겠느냐"고 겸손의 말을 잊지 않았다. 역시 1000만 감독다운 말이었다. (스포츠조선 전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