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컴 노킹'나를 찾아떠나니 그 끝에 가족이 있더라

빔 벤더스(61)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칸의 그랑프리를 움켜쥔 ‘파리, 텍사스’(1984) 이후 독일 전후 세대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인정 받아온 그는, 갑년을 맞은 지난해 ‘돈 컴 노킹’(Don’t come Knocking)이라는 낭만적인 로드무비를 만들었다. 관객이 ‘빔 벤더스 영화’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선입견을 비웃듯, 영화는 편하고 부담없는 화술(話術)로 낭비한 인생을 담담하게 읊는다. 물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채. 공교롭게도 주연은 샘 셰퍼드, 20년 전 ‘파리, 텍사스’의 시나리오를 썼던 그 사람이다.
서부극 스타 하워드 스펜스(샘 셰퍼드)는 술과 마약, 여자에 찌들어 버린 왕년의 명배우. 옛 명성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연명하고는 있지만, 내면은 황폐해진 지 오래다. 촬영 현장에서 감독 몰래 도망친 이 중년 배우는 30년 동안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던 고향, 네바다 엘코를 충동적으로 찾아간다. 미국 서부를 가로지르는 여정은 잊어버린 자신의 추억과 잃어버린 자신의 시간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현실에 등 돌리고 과거로 퇴행하는 모습을 보이던 영화가 전기를 맞이하는 지점은 고향집에서 어머니와 만난 이후. 눈 밑이 자글자글한 노모(老母)는 “서부 어딘가에 네 아들이 장성해 있다”는 사실을 들려 준다. 스펜스는 다시 여행을 시작하고, 쇠락한 도시 몬태나 뷰트에서 예전의 사랑이었던 도린(제시카 랭)과 아들 얼(가브리엘 만)을 만난다. 여기에 생각지도 않았던 젊은 여인 스카이(사라 폴리)까지 결합하면서, 영화는 급격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죽은 엄마의 유골함을 들고 찾아온 스카이 역시 이 대책없는 중년 배우의 딸이었던 것.
후회와 회한 속에서도 희망을 길어올리는 빔 벤더스의 여유로운 시선은 ‘돈 컴 노킹’의 작지 않은 매력이다. 젊은 얼과 스카이를 통해 뿜어내는 싱싱한 에너지는 이 영화의 무게중심이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 지를 간명하게 보여준다. 한 발자국 더 들어가자면, 불멸(不滅)의 성취는 결국 유전자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개인은 시간의 화석으로 몰락할지언정. 23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