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현장을 가다] 부산 수영만 '보고싶은 얼굴'

이른 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도착한 부산 수영만 영화 스튜디오. 발 디딜 틈조차 없었던 부산국제영화제의 열기는 찾아 볼 수 없었지만, 곳곳에서 풍겨져 나오 는 분위기에서 '영화도시 부산'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날 찾아간 영화는 '보고 싶은 얼 굴'(감독 김해곤, 제작 굿플레이어). 이 외에도 각각의 스튜디오에서는 '잘 살아보세'와 '사생 결단' 등 두 편의 '꿈'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건물 지하에 깊숙히 자리한 세트장 문을 여는 순간 악다구니를 쓰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 렸다. 그들의 대화 속으로 빠~져 봅시다
1. 감독 : 어이~장진영 선수, '씨X'가 아니야…
2. 진영 : 그럼 뭐라고 해요?

"어이쿠 이거 촬영 중에 혹시 싸움이라도 난 것 아냐?" 싶은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러나 오히려 여자의 악다구니가 더욱 세어지고, 남자의 욕설이 더욱 거칠어질수록 감 독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흘렀다. 이날은 술집 작부 연아(장진영)와 양아치 영운(김승우)이 말다툼을 벌이는 장면을 찍고 있었다. 말이 다툼이지 이 둘은 극중에서 늘상 악을 써대고, 막욕을 해대면서도 사랑을 한다. 대중들에게는 개성파 연기자로 낯이 익지만, '파이란'의 시나리오를 썼던 실력파이기도 한 김해곤 감독은 이들 '삼류' 캐릭터를 통해 사랑과 이별의 참혹한 현실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3. 감독 : '씨~이X'라고 해야지.
4. 진영 :아따 욕 원없이 해보네요.
장진영의 악다구니가 더욱 세어지고
김승우의 욕설이 거칠어질 수록
감독의 입가엔 흐뭇한 미소가… 계속해서 들려오는 욕설 때문에 가끔씩 싸움구경을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기는 했지만, 김 감독의 넉넉한 익살과 걸쭉한 입담 덕에 현장 분위기는 화기애애. 배우 출신인 데다 '욕의 달인'인지라 배우들의 욕 하나하나까지도 직접 지도해주는 김 감 독. "어이, 장진영 선수! '씨X'라고 하지 말고, '씨~이X'라고 해 봐…." "옳지. 굿!" 하지만 촬영 내내 특히 눈길을 끄는 건 바로 장진영이었다. 그동안 주로 현대적이고 세련 된 이미지를 선보였던 장진영은 완전히 변신해 있었다.

아무렇게나 목이 늘어진 티셔츠에 타이즈 차림에 부시시한 퍼머머리. 입에는 아예 욕을 달고 다니고, 삶 자체가 '악'인 술집작부 연아가 돼 있던 것.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거머쥐었던 배우 답게 수차례의 술집 탐방과 욕설 사사 등을 통해 캐릭터를 분석했다. 김승우도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별로 와 닿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어서 보니 가슴 깊이 와 닿더라. 특히 나를 잘 아는 김 감독이 연출을 해 더욱 믿음이 간다"며 김 감독을 추켜세웠다. 김 감독과는 영화 '장군의 아들' 때부터 우정을 쌓아온 16년지기. 또 한가지 이 영화는 특이한 점을 갖고 있다. 서울을 배경으로 하지만 부산 올 로케이션으 로 진행됐다는 것. 다른 특별한 이유는 없고 부산이 장소 섭외에 용이했단다. 김 감독은 "서울과는 달리 시 차원에서 적극 협조를 해 줘 남포동 거리를 통째로 빌려 촬 영하기도 했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인생 막장을 향해 치닫는 여자와 삼류 건달의 지독한 사랑을 그려낼 영화 '보고 싶은 얼 굴'은 이달 말 촬영을 끝내고 5월 중 관객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스포츠조선 부산=김천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