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LG배 세계기왕전] 銳鋒은 피했으나

〈제13보〉(135~145)=이세돌을 묘사하는 어휘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배짱’이다. 구리는 이를 ‘저항적 기풍’이라고 표현했다. 잠시만 긴장을 풀고 있으면 상식을 벗어난 발상으로 기습, 상대방이 읽어두었던 진행을 일거에 헝큰다는 것. 하지만 상식으로부터의 이탈은 자체적 허점도 수반하기 마련이어서 그만한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백이 흑을 향해 “‘가’로 나갈 테면 나가보라”고 일갈하는 장면. 달아나면 키워서 잡겠다는 뜻이다. 대신 놓치면 무일푼이 되니 웬만한 강심장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이런 수읽기는 아예 폐기해 버린다. 일단 135로 때려냈을 때 136은 패를 키우는 수단. 초반 우상귀 전투 때도 등장한 바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흑 ‘가’로 한 번 기어나가 보자. 참고도 10까지, 이것은 서로 겁나는 승부가 된다. 그 예봉을 살짝 피해 137로 전환한 감각이 정확했다. 이후 144까지는 이렇게 될 곳. 그러나 당연해 보이는 145엔 착각이 있었고, 여기서부터 바둑은 또 한 차례 일진광풍의 흙먼지 속에 뒤덮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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