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 最古 극영화 1936년작 '미몽' 공개

스크린에 내리는 비가 해방 이전 최고의 스타배우 문예봉의 몸을 수직으로 나눈다. “어딜 나돌아다니느냐”는 남편의 꾸짖음에 “나는 조롱에 든 새가 아니에요”라며 거칠게 반항하는 젊은 새댁. 객석에는 폭소가 뒤따랐다.
지난 2월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고전영화관에서는 독특한 행사가 열렸다. 한국 영상자료원이 준비한 ‘최고(最古) 한국영화 발굴 공개전’. 1936년 작 ‘미몽’(迷夢·감독 양주남)의 시사회다. 이효인 원장은 “영화 수집상으로부터 중국에 필름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1년 동안 마치 첩보전처럼 소재 파악에 나섰다”면서 “중국전영(電影)자료관의 협조를 얻어 마침내 지난해 12월27일 ‘미몽’ ‘반도의 봄’(1941) ‘조선해협’(1943) 등 세 편의 프린트를 입수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일명 ‘죽음의 자장가’로 불리는 ‘미몽’의 의미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극영화라는 점. 하지만 그런 영화사적 의의 못지않게 작품 자체로도 상당히 흥미로운 텍스트다. ‘계몽’이나 ‘선전 도구’가 아닌 ‘상업영화’로서의 재미를 담뿍 지니고 있는 것.
북한에서 ‘인민배우’ 지위에까지 오른 문예봉의 데뷔 2년차 젊은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점도 주목 대상이지만, 여염집 아낙의 일탈과 욕망을 그린 내용 역시 도발적이다.
허영이 심하고 살림에도 무관심한 애순(문예봉)은 남편(이금룡)의 꾸지람에 그날로 가출하고, 처음 만난 사내와 눈이 맞아 호텔 생활을 시작하는 파격을 보여준다. 1930년대 경성인지 2000년대 서울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당신 또 어딜 가는 게요?” “데파트에 가요” “뭔 옷을 또 산다는 게요?” 등의 주고받는 대사에선 끊임없이 웃음이 터져 나온다.
부잣집 아들인 줄 알았던 정부(情夫)가 사기꾼 날강도로 밝혀진 뒤 가차없이 경찰에 신고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영화 마지막 다친 딸 앞에서 “정희야 어서 자거라, 엄마도 자겠다”고 달랜 뒤 음독(飮毒)하는 문예봉의 표정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70년 전 필름인 만큼 스크린 상태는 좋지 않고 잡음도 계속되지만, 몰입을 크게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2000원(경로우대 1000원)의 입장료로 ‘미몽’ 등 4편의 해방 이전 영화들을 볼 수 있는 특별시사는 일요일(5일)까지 계속된다.
(02)521-2101, www.kore afilm.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