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는 정말 불가사의한 승부사다. 위기다 싶을 때 되살아나는 복원력은 누구도 흉내내기 어렵다. 2일 끝난 제49기 국수전 우승만 해도 그렇다. 이 대국에 앞서 이창호는 삼성화재배 결승과 농심배 최종국서 각각 뤄시허(羅洗河) 및 요다(依田紀基)에게 졌다. 앞은 메이저 결승서 외국 기사에게 처음 당한 패배, 뒤는 이 대회 사상 첫 오점이었다. 두 차례의 치명상. 국수 탈취는 도저히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신비스러운 역풍으로 “이창호 시대도 이제는 갔다”던 비관론자들을 잠재워버렸다. 숙적 최철한과 펼친 국수전은 국내 판도를 재편하는 분수령이었다. 중요한 타석(打席)에서의 극적 홈런 한 방으로 이창호는 “슬럼프? 그게 뭔데?” 하는 표정으로 국내 5관왕에 복귀했다.
이창호의 ‘오뚝이 기질’은 꼭 1년 전 농심배 때도 발현됐다. LG배 4강 탈락, 최철한과의 국수전 0대3 패…. 2005년 초 상하이행 비행기에 오를 무렵 그의 새해 성적표는 1승 5패였다. 하지만 그는 4승을 추가하며 농심배를 지켜냈고 무성하던 ‘이창호 퇴조’설을 일거에 진압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무심한 얼굴로 제 자리에 되돌아갔다.
바둑의 역사를 돌아보면 ‘반짝 스타’는 무수히 많았으나 긴 호흡으로 롱런한 승부사는 손 꼽을 만큼 희귀했다. 뛰어난 기사들도 중요한 바둑서 연패하면 긴 슬럼프는 보통이고 심하면 사양(斜陽) 길에 접어들기도 한다. 15년 정상에 129회 우승을 달리며 이창호는 재주보다 꾸준함이, ‘승승장구’보다는 ‘백절불굴’이 더 값짐을 보여주고 있다. 3년 만의 국수 탈환 후 인터뷰에서 그는 “패하면 자극받아 권태가 사라진다”고 했다.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툭툭 털고 일어나는 끈기와 은근함. 그 불가사의한 복원력의 ‘약효’는 언제까지 계속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