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舞飛딴생각] 유통기한이 영원한 특별 '상품'

영화의 역사는 영화를 대중들에게 돈을 받고 보여준 바로 그 시점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상품이었던 영화는, 일반적인 상품과는 다른 몇 가지 특성을 지닌다. 영화라는 상품의 10가지 특징을 살펴보았다.

1. 효용가치의 격차가 크다
어떤 상품의 가격 이면에 존재하는 가치를 효용가치라고 할 때, 영화는 그 격차가 매우 크다. 자동차를 구입했을 때 차종에 따라 승차감이나 연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단 굴러가기만 하면 소비자의 만족도에선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볼펜도 일단 써지기만 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하지만 같은 영화를 보면서, 누군가는 계속 코를 골며 자고, 중간에 재미없다고 나가는 사람도 있으며, 어떤 사람은 그 영화를 보고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2. 공공재의 성격이 강하다
이윤 추구를 위해 만들어지지만 영화는 공공재의 성격이 강한 상품이다.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개인에게 소유될 수 없는 공동 소유물이다.

3. 유효기간은 짧지만 유통기간은 영원하다
배급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한 편의 영화가 상영을 시작해 끝마칠 때까지의 기간은 그다지 길지 않다. 필름이라는 물질이 반영구적이라는 걸 염두에 둔다면, 영화가 극장에서 상품으로서 유효한 기간은 매우 짧은 편이다. 하지만 그 유통기간은 영원하다. 100년 전, 5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도 현재 관객들에게 소비될 수 있다.

4. 제작비와 무관하게 가격은 동일하다
수백 억 달러가 투자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제작비 1억 원도 안되는 독립영화. 하지만 우리가 극장에서 그 영화를 만나는 비용은 똑같다. 그리고 쾌감이 반드시 제작비에 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5. 가격에 비해 제조업자의 수익이 적다
극장 부율이라는 게 있다. 배급사(도매상)와 극장(소매상)이 수익을 나누는 비율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국산품(한국영화)의 경우 극장이 6, 배급사가 4를 가져간다. 수입품(외화)은 5:5다. 제조업자나 수입업자의 입장에서 보면 손익분기점 넘기기가 꽤나 힘든 구조다.

6. 담는 방식에 따라 성격과 가격이 바뀐다
상품적 관점에서 본다면 무작정 ‘영화’라고 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영화는 필름에 담겨 극장에서 상영되기도 하지만, 비디오와 DVD와 공중파와 케이블TV와 위성방송과 DMB와 인터넷 등을 통해 다양하게 가공되고, 소비하는 방식과 가격은 또한 모두 다르다.
7. 재료가 좋다고 꼭 좋은 상품은 아니다
A급 스타와 스탭, 해외 로케이션의 이국적 스펙터클, 첨단 기술력과 대규모 특수효과…. 이런 값비싼 재료를 사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많은 소비자들이 찾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8. 제품 품질과 판매량이 비례하는 건 아니다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고 평단의 격찬을 받는다고 해서, 즉 제품의 품질을 인정받는다고 해서 흥행에 성공하는 건 아니다. 대부분은 오히려 그 반대 아닐까?

9. 애프터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영사 사고가 나지 않은 이상, 영화가 재미없다고 해서 관람료를 되돌려 달라고 할 순 없다. 그 영화 때문에 기분 나빠졌다고 해서 정신적 보상을 요구할 수도 없다. 영화라는 상품은, 정말 잘 생각하고 골라야 한다.

10. 상품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아직도 영화를 상품으로만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만만치 않다. 영화라는 무형적 존재는 예술이며 문화이고, 그 안엔 욕망과 환상이 있으며, 정서적이고 때론 교육적이기도 하다. 꿈과 가장 근접해 있는 상품, 영화. 그러기에 항상 논쟁과 시비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건, 영화라는 독특한 상품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월간 ‘스크린’ 김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