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훈 "나 아직 안죽었어!"

이국 땅에서 만개(滿開)한 한국 바둑의 또 다른 한 떨기 꽃 조치훈<사진>. 여섯 살 코흘리개 때 도일 유학을 떠났던 그도 올 6월이면 지천명(知天命)의 대열에 들어선다. 황금기를 구가하던 일본 바둑의 심장부에서 조치훈은 40여 년 동안 초인적 활약을 펼치며 무려 68회나 정상에 섰다. 아직도 10년 내엔 결코 깨지기 힘든 난공불락의 대기록이다.
50줄에 접어들었어도 조치훈의 기록 행진에 멈춤이란 없다. 그는 지난 8일부터 10단전 방어전을 시작했다. 일본 랭킹 4위 기전이자 조치훈이 현재 보유 중인 유일한 타이틀이다. 올해 도전자는 야마시타(山下敬吾·27). 한 달 전 최고 타이틀 기성(棋聖)을 쟁취, 일본 1인자로 등극한 새로운 주역이다. 야마시타는 특히 조치훈에게 8연승 포함 통산 9승 3패를 기록 중이어서 조치훈으로선 감당하기 힘들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첫 뚜껑을 연 결과는 조치훈의 낙승이었다. 백을 쥔 그는 노련한 운석으로 새로운 패자(覇者)를 꽁꽁 묶어버렸다. 224수 만의 불계승. 물론 5번기니 만큼 아직 결과를 속단하기엔 이르다. 27일의 2국을 지켜보면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타이틀 무대를 온통 20대와 30대가 장악하고 있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 갓 5학년(?)으로 진급한 조치훈은 이미 최정상권 기사는 아니다. 2002년 요다(依田紀基)와의 명인전 리턴매치 실패 후 그는 3대 기전에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세 차례나 ‘대3관(大三冠)’에 올랐던 전성기 때처럼 그는 여전히 ‘목숨을 걸고’ 바둑판 앞에 앉는다. 그 불굴의 투혼으로 타이틀 수는 아직도 쌓이고, 추격자들과의 거리는 더욱더 까마득하게 멀어져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