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나잇 앤 굿 럭' 매카시즘의 광기, 흑백으로 녹여내

‘굿 나잇 앤 굿 럭’. 영화의 제목인 이 말은 1950년대 초 매카시즘에 맞섰던 미국 CBS의 뉴스 다큐멘터리 ‘See it now(씨 잇 나우)’의 전설적인 앵커 에드워드 머로우가 습관처럼 내뱉던 클로징 멘트다. 머로우는 ‘빨갱이’라는 말 한 마디에 이성이 맥없이 무장해제되고 마는 현실을 낱낱이 까발린 인물로, 상원의원 매카시와 그의 팽팽한 대결은 TV 저널리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굿 나잇 앤 굿 럭’은 머로우의 용기에 초점을 맞춰, 변질된 애국주의의 횡포와 언론의 소명을 다룬 영화다.
9.11 이후 미국 사회가 관용을 잃고 한쪽으로 쏠려가는 현실에서 매카시즘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들고 나왔다는 자체가 이채롭지만, 사실 이 영화를 보는 키워드는 배우 조지 클루니다. ‘컨페션’으로 감독 데뷔를 한 조지 클루니가 연출, 각본, 제작, 출연(PD 프레드 역)까지 1인 4역을 맡아 작심하고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조지 클루니는 30년간 뉴스 앵커로 활약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오래 전부터 가슴에 품고 있었던 영웅 머로우를 스크린에 부활시키는 걸 꿈꿔왔다. 그래서 영화 곳곳에서는 머로우에 대한 그의 경외와 애정이 날 것 그대로 묻어난다.
‘굿 나잇 앤 굿 럭’의 미덕은 시종일관 광포한 현실을 매섭게 몰아붙이지만, 카메라의 시선이 들뜨지 않고 침착을 유지한다는 데 있다. 특히 다분히 정치적인 주제를 현란한 컬러의 선동에 맡기지 않고, 단조로운 흑백톤으로 구현한 조지 클루니의 선택은 탁월한 느낌이다. 흑백 화면은 50년대 매카시 의원의 연설과 레드 콤플렉스로 희생당한 실존 인물의 기록화면을 매끈하게 이어 사실감을 더했을 뿐 아니라, 광기에 억눌린 침울한 사회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살려냈다. 화면에 녹은 재즈 선율 역시 암울한 시대상과 자본의 논리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냉정한 언론 현실을 보여주는 장치로 제 몫을 했다.
영화는 분명 미국의 부끄러운 역사를 통째로 꺼내 메스를 가했다는 점에서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을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수정 헌법 1조를 수없이 되풀이 하는 듯한 계몽적인 어조와 영웅주의의 답습은 대중성을 철저히 희석시키고 말았다. 이 작품이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아카데미상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지만, 단 한 개의 오스카상도 거머쥐지 못한 채 뒤돌아서야 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16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