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쉬, '너무나 미국적인' 휴머니즘

우여곡절 끝에 국내 개봉을 앞둔 2006년 아카데미 3관왕 영화 '크래쉬'. '당연히' 기대가 큰 작품이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실망'스럽다. 이 작품을 연출한 폴 해기스가 각본을 썼던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복싱을 소재로 했지만, 복싱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도 크나큰 감동을 안겨줄 수 있었다. 복싱을 인간의 본성을 표현하는 도구로 적절히 활용해 인간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따뜻한 가족애 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크래쉬'의 감동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다양한 인종의 커플들과 그들의 충돌을 통해 단절된 현대인의 소외감과 편견, 상처와 극복 등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너무 미국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국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의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호평을 받기에는 충분했을지 몰라도, 인종 차별과 총기 사고 등에 대한 개념이 없는 우리 관객들의 공감을 얻기에는 설득력이 약하다. 극 초반 흑인 수사관 그레이엄(돈 치들)의 대사("LA에서는 아무도 서로를 건드리지 않아. 모두 금속과 유리 안에 갇혀 있지. 서로에 대한 느낌이 너무 그리워서, 서로를 느끼기 위해서 서로 충돌하게 되는 거야")에서 보인 문제 의식은 너무나 뻔한 휴머니즘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한국인이라면 기분이 썩 좋지 않을 장면도 있다. 교통사고로 만신창이가 된 한국계 남자가 응급실로 달려온 아내에게 한국말로 "지갑에서 수표 꺼내서 빨리 캐시(현찰)로 바꿔 와"라고 말한다. 차별로 인한 편견의 문제를 다룬 영화에서 한국인을 '돈벌레' 쯤으로 묘사하는 장면이 나오는 건 아이러니다. 그래도 한 가지 부러운 건 있다. 스타 배우들이 자신의 출연료를 기꺼이 낮추고, 제작비까지 모아가면서 만드는 한국영화는 언제쯤 나올까. 4월6일 개봉 예정. (스포츠조선 김천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