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사이버 배우에 매혹당하다

점심을 먹고 난 일요일 오후 2시. 무엇을 새로 시작하기엔 좀 늦은 시간입니다. 이 시간대 EBS에서 방송하는 오래된 영화는 영화를 좀 더 깊이 알고 싶은 시청자들에게는 좋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1924년부터 시작해 전세계에서 5번이나 리메이크된 ‘바그다드의 도둑’(The Thief of Bagdad)은 1940년 작으로 당시로서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특수효과로 치장해, 아카데미 촬영상 미술상 특수효과상을 수상했습니다.
사악한 신하 자파의 계략으로 지하 감옥에 갇힌 바그다드 왕국의 왕자 아매드(존 저스틴분)가 좀도둑의 도움으로 탈출해 나중에는 공주와 결혼하게 된다는, 아이들 동화와 꼭 같은 내용입니다. ‘나는 양탄자’ 대신 ‘나는 말’이, 램프 요정 지니가 아닌 성질이 좋지 않은 ‘병 속의 지니’ 가 나오는 이 영화는 초기 유성영화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습니다.
‘시몬’(Simone)은 콧대 높은 배우(위노나 라이더)와의 불화로 영화가 좌초될 위기에 처한 할리우드 감독 빅터(알 파치노)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사이버 배우를 만들어 세상을 속이는 얘기입니다.
‘가타카’ ‘트루먼 쇼’를 만든 앤드루 니콜 감독은 자신이 만든 이미지에 지배당하는 감독을 통해 이미지의 시대에 대한 나름의 분석적 태도를 보여줍니다만, 그 통찰이 전작에 비해 떨어져 아쉽습니다. 영화가 개봉된 해, 감독이 사이버 배우로 등장했던 레이철 로버츠와 결혼을 했다는 게 이 영화의 최대 성과가 될 듯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