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산행코스] 영남의 산 - 망산

▲ 가라산 망등에서 내려다본 망산을 비롯한 해금강 일대.

최근 대전과 통영을 잇는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찾기가 한결 수월해진 거제도(巨濟島). 거제도는 제주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섬이다. 지금은 육지와 이어진 거제대교가 가로놓여 있기에 섬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700리에 이르는 해안도로가 서울보다 조금 더 큰 거제도를 감싸고 있으며, 곳곳에 명승지와 문화유산이 있다.

입춘이 지났건만 아직도 봄은 멀게만 느껴진다. 이상기후로 인한 입춘 이후의 폭설과 한파는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그나저나 제 아무리 종잡을 수 없는 요즘의 날씨라 하더라도 한겨울 엄동설한에야 비할 바 아닐 것이다. 특히 남해안의 봄 날씨는 변덕스런 철부지 같지만 그래도 꽃소식이 들려온다.

▲ 내봉산의 절벽과 바다에 떠 있는 대·소병대도.

동백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거제도로 향했다. 무엇보다 동백꽃이 반가운 이유도 있지만, 거제의 남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망산(望山·373m)을 찾아 꽃도 보고 산도 즐기며 봄을 맞고 싶어서다.

경남 거제시 남부면 저구리에 위치한 망산은 거제도의 10대 명산 중 하나다. 산 자체의 아름다움도 빼어나거니와 바다 조망을 즐기기에는 단연 제일이다. 산이 섬이고 섬이 바다인 남해안 곳곳에는 ‘멀리 내다본다’는 뜻으로 망(望) 자를 쓰는 산이 많다. 물론 무엇인가 바라보고 감시한다는 의미가 짙다. 이곳 망산 역시 왜구의 침범을 감시하던 곳이다.

▲ 가라산 산행 들머리에는 깔끔한 등산로 안내판이 산객을 맞는다.

고려 말 국운이 쇠퇴하면서 왜구의 잦은 노략질로 주민들의 피해가 빈발하자 이 산꼭대기에 올라 적의 동태를 살피며 망을 보았다고 한다. 이 산 건너편의 가라산 언저리에도 성터와 봉화대 자취가 아직도 남아 있으며, ‘망등‘이란 지명도 있어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또 숭어나 멸치 등 어군을 탐지하며 고기떼들의 이동에 대한 망을 본다는 의미도 있다.

이번 산행은 가라산과 망산을 연계했다. 이 두 산은 거제의 제일 남쪽에 있는 데다가 얼마 전까지는 교통편이 좋지 않아 지방의 산꾼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산이 아니었다. 게다가 계룡산(554.9m)이나 노자산(565m), 옥녀봉(554.7m) 등 소문난 산에 가려져 왔었다.

탑포 마을서 시작, 가라산과 연계

▲ 가라산은 거제도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노자산과 남북에 솟아 있다.

탑포 마을 위 좌측 도로(1018번 지방도)에서 시작되는 등산로 입구에는 깔끔하고 자세한 안내판이 서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옷깃을 세워야 할 정도로 쌀쌀하다. 등에 땀이 배일 무렵이면 혤기장을 만난다. 가라산~망산을 잇는 주능선으로 표시목(가라산 0.2km, 노자산 4.5km, 다대마을 2.5km, 저구 2.4km, 탑포마을 위 도로 1.2km)도 서있고 조망도 열린다. 왼편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가라산 정상까지는 헬기장이 3곳 있다.

가라산(加羅山·585m)은 거제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노자산과 같은 능선 상에 남북으로 자리 잡고 솟아 있다. 학동 마을 뒷산은 노자산이고, 다대 마을 뒷산은 가라산이다. 가라산은 가야시대 금관가야의 국경이 북으로는 가야산(해인사 뒷산), 남으로 거제도의 남쪽 끝 산까지였다. 이에 남쪽의 가야산이 가라산으로 변음됐다는 말이 전해진다. 

이곳에서 오늘의 목표로 하는 망산은 되돌아 나가야 한다. 가라산에서 망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거제지맥의 일부 구간이다. 거제지맥은 남쪽 망산에서 북쪽 대금산 시루봉까지 남북으로 총 50.5km에 이른다. 2004년 거제지역의 대우조선산악회와 우정알파인클럽이 대우조선해양(주)의 지원을 받아 등산로 정비는 물론이고 지맥의 표석도 설치했다.

▲ 다대산성의 돌이끼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봉화대의 잔재가 남아 있는 망등까지는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15분이면 닿는다. 거제의 주봉화대 역할을 했다는 망등에 서면 가야할 망산을 비롯해 바다와 접한 인근 마을들도 속속들이 볼 수 있다. 갈림길 표지목에서 다대 마을 2.1km를 가리키는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바위들이 뒤엉킨 내리막길은 까다롭지만 전망이 시원하다. 멀리 해금강이 보이고 발아래는 다대 마을이 앞바다를 호수 삼아 엎드려 있다.

20분이면 거제지맥 표석이 있는 학동재 갈림길. 직진하면 다대 마을로 내려서게 되는데, 이 길을 버리고 오른편으로 틀어 상록활엽수와 해송이 어우러진 숲길을 걷는다. 큰 오르내림이 없는 부드러운 능선길을 따라 20분이면 다대산성(다대포성)이다. 성터에 올라서서 뒤돌아본 가라산은 햇빛을 받아 환하다. 후박나무를 비롯한 사철나무 등이 계절감각을 무디게 하고, 성곽의 돌멩이에 붙은 푸른 이끼에서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이 성은 산정식(山頂式) 산성으로 둘레 395m, 높이 3.2m의 자연석으로 쌓았다. 산성을 뒤로 하고 한번 내려섰다가 야트막한 봉우리를 오르면 삼각점이 있는 200.8m봉이다. 여기서 14번 국도가 지나는 저구고개까지는 10분이면 도착한다.

남부주유소가 있는 이곳은 서쪽의 명사 마을과 동쪽의 다포 마을간 넘나드는 고개로 망산을 오르는 들머리다. 땀을 식힌 후 식수를 준비해 고스락으로 접어든다. 소나무와 후박나무 등이 빽빽하게 들어찬 짙은 숲길이다. 경사가 심한 오름길을 벗어나면서 첫 봉우리인 각지미(255m)에 이른다. 가야할 망산 능선이 눈앞에 열린다.

▲ 망산은 거제의 10대 명산에 속한다. 상봉과 내봉산(왼편) 그 뒤로 천장산이다.

다시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가 완경사의 309m봉에 오른다. 이 지역에서는 ‘새말번디’라 부른다지만 어디에도 안내판은 없다. 급경사에 자갈길인 여차등 갈림길까지는 고도가 낮아졌다가 다시 내봉산으로 치고 올라야한다. 여차등에는 벤치가 설치돼 있어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목도 축인다. 여기서 여차 마을까지는 0.2km다. 여차 몽돌해변은 영화 ‘은행나무 침대’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곳이다.

쉼없이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내봉산으로 오른다. 359m밖에 되지 않는 낮은 산인데도 무척 가파르고 험하다. 길 잃을 염려는 없지만 급경사로 비스듬히 걸쳐진 나무둥치를 지나 로프가 매달려 있다. 왼편의 낭떠러지 절벽을 피해 바윗길로 오르면 일망무제의 바다가 펼쳐지며 황홀경에 빠진다. 동쪽의 여차 마을 뒤 천장산(275.5m)과 그 너머로 해금강이 해안선을 따라 곡선으로 이어주고 있다.

수평선 위에 점점이 뿌려진 다도해의 절경은 지금부터 계속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내봉산에서 해미장골등까지 40여분간의 길은 암릉길이다. 위험구간에는 로프가 설치돼 있지만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망산은 왜구의 침범을 감시하며 망을 보던 곳에서 유래했다.

내봉산에서 15분 정도, 바위에 뿌리를 박고 있는 아름드리 노송을 만난다. 천년송이라고도 하는 소나무 그늘 아래를 벗어나면 호연암(315m)이다. 홍포와 갈라지는 갈림길. 홍포(虹浦)는 일명 무지개마을로 일출과 일몰이 아름다운 곳. 갯가 마을이 무지개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호연암에서 망산 정상을 바라보고 안부로 내려서는 암릉길은 무척 까다로워 제법 신경이  쓰인다. 안부는 ‘해미장골등’으로 갈림길 표시목(저구 4.4km, 홍포 0.6km, 정상 0.5km)이 있다. 정상까지는 10분이면 넉넉하게 도착된다.

정상은 널찍한 암반으로 남쪽은 깎아지른 절벽이다. 훤칠하게 자라 잡은 화강암 표석은 앞면에 ‘망산 397m’, 뒷면에는 한자로 ‘천하일경’이라 새기고 2003년 1월15일 세웠음을 알리고 있다. 과연 그 글귀처럼 둘도 없는 절경에 취할 뿐이다. 상봉에서 바라보는 남해바다는 수정처럼 맑고 깨끗하다. 멋스런 굴곡을 자랑하는 해안선. 그 너머 바다위에 떠 있는 대·소병대도, 홍도, 매물도, 장사도, 가왕도, 죽도, 한산도 등등 수많은 섬들이 제각각의 자리에서 절경을 뽐낸다.

맑은 날이면 대마도도 볼 수 있다는 망산. 옛날 우리의 선조들에게는 생사여탈권이 달린 망산이라면, 지금은 다도해의 절경을 감상하는 전망대로서의 망산이 존재할 뿐이다.

▲ 여차등 갈림길. 여차 마을까지는 0.2km 거리다.

북쪽으로 나아가면 숲지대를 거쳐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다. 지나온 가라산~망산의 능선은 물론이고 멀리 옥녀봉도 보인다. 내려서는 하산길은 ‘칼바위등’으로 스릴감 있는 암릉을 탄다. 30여 분쯤 울퉁불퉁한 바윗길을 빠져나와 산사면을 따라 울창한 숲길이 이어진다. 숲속에 자리 잡은 대형 무덤을 지나 5분이면 도로에 서고 곧이어 명사 마을에 이른다.

명사 마을 이름은 모래의 질이 좋고 물이 맑다고 해서 유래됐다. 특히 명사 해수욕장은 아름다운 백사장뿐만 아니라 해수욕장 뒤편의 울창한 송림으로도 유명하다. 도로를 따라 30분이면 저구고개에 다다른다.

돌아오는 길에 시간이 넉넉하다면 천연기념물 제233호인 학동의 동백림과 팔색조 번식지를 둘러보는 것도 좋으리라. 도로변에 위치한 이곳 동백림의 동백꽃은 12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피며 3월이면 절정을 이룬다.

글 사진 황계복 부산시산악연맹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