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떨군 이창호, 입술 부르튼 조훈현…

예정보다 하루 앞당겨 항저우(杭州)를 떠나던 날 아침. 식당에서 창하오(常昊)와 마주쳤다. 한국 기사 6명 중 4명을 혼자 눕혀 우리 선수단을 조기 귀국시킨 장본인이다. 축하 인사를 건네자 혼자 앉아 주스를 마시던 그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겸연쩍어했다. 연전(連戰)의 피로감으로 그의 양쪽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숙소를 떠날 무렵 구리(古力)가 나타났다. 그는 이번 대회 기간 중 가장 행복한(?) 청년이었다. 한·중 양국 기사들이 검토하는 동안 한쪽 구석에서 자주 인터넷 포커 게임을 즐기던 중국 팀 주장. 그때만 해도 “곧 맞싸우게 될 한국 기사들 전력이 궁금하지도 않을까”하고 생각했었지만 기우였다. 창하오 선(線)에서 모든 일정이 끝난 덕분에 돌 한 개 안 놓아 보고도 거액의 배당금을 분배 받은 그는, 열광하는 자국 관객들 앞에서 우승컵을 번쩍 들어올리던 때와 똑같은 미소로 한국 선수단을 전송했다. 고개를 떨군 이창호, 입술이 부르튼 조훈현이 차에 오르자 악몽 같던 샹그릴라 호텔이 저 멀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작은 전장(戰場) 한 개를 잃었을 뿐일는지 모른다. 지나친 비관도, 호들갑도 금물이다. 하지만 최근의 잇단 연패가 심상치않아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번 제1회 강원랜드배 패배로 한국은 삼성화재배, 정관장배, 농심배, LG배에 이어 올 상반기에 벌어진 5개 국제 대회서 단 한 차례도 우승 컵을 품에 안지 못했다. 춘란배 8강도 중국에 2대6으로 몰려 있다. 같은 자원(資源)으로 갑자기 이토록 급전직하할 수 있는 것인지, 잇단 부진의 원인은 무엇인지, 한국 바둑 위기설은 이제 설(說) 아닌 현상으로 굳어져가고 있는 건 아닌지…. 우리 바둑계에 ‘진단’과 ‘처방’의 숙제를 안겨준 일주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