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딕 앤 제인' 알거지 된 부부, 강도로 전업하다!

굴지의 IT 기업에 10년 넘게 근무해오던 딕(짐 캐리)은 어느날 홍보 담당 부사장으로 전격 발탁된다. 직장 일에 지겨워하던 아내 제인(테아 레오니)은 남편 승진 소식에 들떠서 곧장 회사를 사직한다. 정원에 새로 잔디를 깔고 수영장 공사까지 주문하며 행복에 들뜬 부부. 그러나 회장인 잭(알렉 볼드윈)이 주식을 몽땅 팔아치우고 도주하는 바람에 회사가 파산해, 승진 다음날 딕은 곧바로 실직한다.
아무리 코미디라도 이런 비참한 에피소드를 보며 웃어도 될까. ‘뻔뻔한 딕 & 제인’(Fun with Dick & Jane)은 그런데도 계속 웃긴다. 딘 패리솟 감독은 딕 부부가 결국 가진 돈을 다 쓰고나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을 슬랩스틱 코미디로 그린다. 부부는 옆집 정원의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며 뿌리는 물에 맞춰 샤워를 하고, 무료 급식장을 찾아다니며 끼니를 때운다. 남편이 새벽 인력시장에서 일용직을 얻으려다 불법 이민자로 몰려 수모를 당할 때, 아내는 인체 실험 대상이 되는 일을 얻었다가 새로운 화장품의 부작용으로 피부가 흉하게 뒤틀린다. 회사 파산으로 함께 실직했던 동료들은 불법 투계장을 운영하거나 대마초를 재배하다가 체포된다.
한참 웃다가 불현듯 미안해지는 영화랄까. 몇 해 전 미국을 뒤흔들었던 ‘엔론 스캔들’을 소재로 삼은 이 사회 코미디는 한순간에 중산층에서 ‘신 빈곤층’으로 전락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풍자적으로 다뤘다. 사실적 설정을 비사실적 해프닝 코미디로 비틀긴 했지만, 황당한 상황 속 터져나오는 웃음 속에서도 이따금씩 비판 의식으로 벼려진 날을 내보이며 날카롭게 빛을 낸다. 딕과 제인이 강도행각까지 벌이게 되는 후반 이후는 할리우드 범죄 코미디의 관성대로 진부하게 진행되지만 말이다.
짐 캐리가 나오는 영화에서 그의 비중은 언제나 주연 배우 이상이었다. 멜로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예민하고 섬약한 연기를 뛰어나게 소화해내 변신의 충격을 던져준 직후이지만, 마치 각운처럼 장면마다 ‘개인기’를 섞어 웃기는 ‘뻔뻔한 딕&제인’에서의 짐 캐리 연기는 여전히 익숙하면서 유쾌하다. 이제는 코믹 연기를 해도 ‘에이스 벤추라’나 ‘덤 앤 더머’ 때만큼 ‘막가는 코미디 영화’를 하지 않고 ‘브루스 올마이티’나 ‘라이어 라이어’처럼 아이디어가 빛나는 작품을 선택하기에 거부감을 줄 경우도 적어졌다. 짐 캐리는 공연한 배우들을 주눅들게 하지만, 이 영화에서 호흡을 맞춘 테아 레오니는 만만찮은 코믹 연기로 제 몫을 놓치지 않았다. 30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