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요리] 해물 칼국수 & 매운 오뎅탕

얼마 전 모 유명 백화점에서 아웃도어 박람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산요리 강습을 한 번 해달라고 해서 찾은 적이 있다.

“요즘 누가 산에 가서 밥을 해 먹습니까? 그냥 간단한 도시락이나 소개해 주세요.”

회의 시간에 적극적으로 산요리에 대해 설명하려는데 백화점측에서 나온 말은 의외였다.

“어째든 우리 백화점 안에서는 불을 피울 수 없습니다. 요리하시려거든 집에서 만들어 가지고 오세요.”

관계자는 막무가내였다.

“아닙니다. 최근 들어 캠핑하는 인구도 많이 늘고 아웃도어 쿠킹에 대해 소비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일 텐데요.”

관계자들을 간신히 설득해 요리를 직접 시연하기로 했지만,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옷이나 신발만 취급하는 백화점에서 그들의 매출과 관계없는 코펠과 버너가 주가 되는 요리를 한다는 게 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일까? 그래도 국내 제일이라는 백화점 아웃도어 담당이 산에서 요리하는 것에 대해 그렇게 모르는 것이 너무도 섭섭했다. 차라리 산에 가서 정상을 생략하고 내려오라는 게 낫지.

야외활동 멋 더해주는 요리들

이번 달은 새 봄을 만끽할 수 있는 4월이다. 비록 눈치 없는 황사가 날리고 땅은 질척이겠지만,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순들을 외면할 수 없는 달이 온 것이다. 주말에 가족끼리 캠핑을 가거나 친구들끼리 모처럼 사이좋게 산을 찾는 이들을 위해 이번 달에도 쉽고 재미있는, 그리고 맛있는 요리 두 가지를 준비해 보았다.

해물칼국수는 조리가 간편하고, 포만감과 영양가가 만점인 요리 중 하나다. 집에서 제대로 해먹기도 벅찰 텐데 어떻게 산에서 해먹을 수 있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조금만 생각하고 준비한다면 라면 끓이는 정도의 노력과 기술로 누구나 쉽게 조리할 수 있다. 따로 밥을 할 필요도 없어 시간과 연료까지 절약할 수 있다.

칼국수는 시중에서 파는 칼국수용 생면을 준비하면 되고, 해물은 생물이 아닌 가공해서 얼린 해산물 믹스(Sea Food Mix)를 사용하면 된다. 이것들은 대형 할인매장에 가면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는 것들로, 가격도 싸고 미리 손질해 놓은 것들이어서 조리하기에도 매우 간편하다.

조리할 때는 코펠에 샘물을 반쯤 채운 다음 머리와 내장을 제거한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육수를 만든다. 중간 불에서 15분 정도 끓이면 육수가 우러나는데, 이 시간을 절약하려면 집에서 미리 만들어 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집에서 만들 때는 재료를 좀 넉넉히 넣고 약한 불에서 오래 끓여 농축액을 만든 후 밀폐용기에 담아 얼려와 요리할 때 물을 희석하는 것이 좋다.

육수가 준비됐으면 불을 세게 하고 해물 믹스와 채 썬 감자를 넣고 끓인다. 감자는 구수한 맛을 낼 뿐 아니라 해산물의 잡냄새를 중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감자가 반쯤 익으면 다시마와 멸치를 건져내고 생면을 넣고 끓인다. 면은 준비해 온 것을 그대로 넣어도 되지만, 요리에 넣기 전에 팔팔 끓는 물에 한 번 끓여 찬 물에 재빨리 식혀 넣으면 더 좋다. 그러면 더욱 쫄깃한 면발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요리에 면을 넣고 나면 센 불에 빨리 끓이는 것이 좋은데, 절대 뚜껑을 덮지 말고 젓가락으로 계속 저어주며 끓여야 한다. 자칫 한눈을 팔면 음식이 넘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물이 넘칠 것 같으면 불을 줄이지 말고 잠깐 동안 불에서 내리거나 찬 물을 조금씩 부어주면 된다. 후자의 경우 육수를 망칠 수 있으므로 맹물을 쓰지 말고 육수를 약간 덜어내어 식힌 후 사용하면 좋다.

면이 반쯤 익었을 때 채 썬 애호박과 풋고추를 넣는다. 풋고추 씨는 제거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소금으로 간을 하고 약간의 김가루를 뿌려 먹기만 하면 된다. 먹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초간장에 다진 양파와 파, 그리고 풋고추를 넣어 만든 양념을 곁들이는 것도 좋다.

봄바람 솔솔 불어오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 잡고 해산물 향을 맘껏 느끼면서 즐기는 이것은 집이나 식당에서 먹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쁨을 줄 것이다. 이 맛을 다른 것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해물 칼국수가 지친 몸과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요리라면, 매운 오뎅탕은 야외활동의 재미와 멋을 더해주는 요리라고 할 수 있다. 오뎅 요리는 비교적 간편하고 맛도 좋아 여러 차례 소개한 적이 있지만, 이번에 소개할 요리는 이전 것과 좀 다른 지방색이 들어가 있다. 이 요리는 대구에 출장갔을 때 처음 경험했는데, 기존에 보아온 구수하고 깔끔했던 오뎅 요리와 다른 신비함과 낯설음을 느끼게 해 준 존재였다. 가끔 기차를 타고 대구를 지나치게 되면 교동시장 깊숙한 곳에서 풍겨오는 이 알싸한 향기가 마음속까지 전해오곤 할 정도라면 과장이 좀 지나칠까?

재료는 간단하기 그지없다. 그저 일반적인 오뎅탕 요리 재료에 고춧가루가 더해질 뿐이다. 그렇다고 일반 오뎅탕에 고춧가루만 넣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대구 교동시장의 억척스런 할머니의 솜씨를 산에서도 한 번 재현해 보자.

먼저 모든 국물요리가 그렇듯 육수를 만들어야 하는데, 육수의 비밀은 바로 불에 직접 그슬린 북어 머리에 있다. 이 값싼 재료가 육수 맛을 좌우한다. 시장 할머니는 이것을 연탄불에 그슬린다고 했지만, 산에서는 연탄불을 피울 수 없으니 버너에 그슬려 준비한다. 만일 북어머리를 준비할 수 없으면 아쉬운 데로 북어채를 준비하면 되는데, 코펠에 넣어 중간 불에서 약간 볶아서 준비해야 한다.

그런 다음 5~6인용 코펠에 반 정도 물을 붓고 준비한 북어 머리나 북어채, 그리고 무, 다시마, 멸치, 새우를 넣고 육수를 만든다. 10분 정도 끓여 뽀얀 국물이 우러나면 재료를 건져내고 고춧가루를 푼다. 고춧가루는 한 번에 많이 넣지 말고 색깔을 맞추면서 조금씩 넣는 것이 좋다.

고춧가루가 적당히 풀렸으면 오뎅을 알맞은 크기로 잘라 넣고 끓이는데, 꼬치로 만들어도 되고 그냥 넣어도 좋다. 오뎅이 익어 부풀어 오르면 소금 간을 하고, 혼다시를 넣어 1분간 끓인 후 불에서 내리기만 하면 된다. 오리지널 일본 오뎅의 깔끔한 맛은 없어도 구수하고 얼큰한 맛은 오히려 우리나라 산에 더 잘 어울릴 것이다.

첫 맛의 알싸함과 끝 맛의 구수함이란 “요즘 누가 산에 가서 밥을 해 먹습니까?”라고 했던 그 백화점 관계자에게 먹여 주었으면 하는 기분이다. 이 맛을 보게 되면 아마 그 사람은 취사야영금지 반대론자가 되어 숨어서라도 몰래 해먹을 것이다. 여기에 따끈하게 데운 정종 대포가 곁들인다면 “캬아~” 하는 탄성을 지르지 않을 독한 사람이 있을까?

커피 한 잔으로 삶의 여유 찾아보자

봄비 내리는 4월, 서늘하지만 춥지 않은 바람을 느끼며 야영장 한 쪽에 자리 잡고 타프(Tarp)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감상하며 즐기는 국물요리는 낭만이요 삶의 즐거움이다. 이제 힘들었던 산행과 진흙 범벅이 된 등산화는 추억이 되고 여유와 사색만이 있을 뿐이다. 비록 세상이 살기 힘들고 여러 가지 책임들이 자신의 어깨 위에 있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자연과 동화되자.

그리고 요리를 즐긴 다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즐겨 보자. 바쁜 일상은 우리 인생의 일부일 것이고, 대자연은 언제나 늘 그렇듯이 그 자리에 존재할 것이다. 이것보다 더 여유로운 삶이 있을까. 가끔은 작은 것이 우리의 큰 위안이 되기도 하는데, 이것마저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측은할 뿐이다.

글 한형석 한국산서회 회원 hshan@kolon.com
삽화 신대휘 자유기고가 totorokids76@yahoo.co.kr
영양가 자문 김소영 영양사 ksy0946@hotmail.com
사진 허재성 기자 heophot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