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리트 러브 스토리'
할리우드만이 미국영화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줬던 뉴요커 영화의 거장 우디 앨런.
그랬던 앨런이 뉴욕을 벗어나서 상업영화를 찍는다는 사실에 많은 영화팬은 '혹시 돈이 떨어졌나'는 의구심을 감추지 못했다. 더구나 변신의 처음을 장식하게 된 영화 '매치 포인트'는 그간 앨런이 주로 보여줬던 '전공'과는 달리 '섹시'와 '유혹' 등으로 설명되는 '시크리트 러브 스토리'. 그러나 앨런은 자신이 상업영화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상업영화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앨런은 라스트신에서 '매치 포인트'라는 영화에 '우디 앨런'이라는 낙관을 찍어 버렸다.(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내용 설명은 생략한다.)
이 영화는 분명 외국 영화이지만, 왠지 우리나라 연속극을 보는 듯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우선 테니스 선수로 자수성가해 오직 성공을 위해 달려가는 남자 크리스(조나단 라이 메이어스)와 크리스 처남과 교제 중에 '눈이 맞아' 그와 이별한 후 유부남이 된 크리스를 맹목적으로 사랑하게 되는 노라(스칼렛 요한슨) 등 주요인물의 설정이 익숙하다. 해서는 안 될 사랑을 하게 되는 커플들이 겪게 되는 이야기들도 '예상했던 대로' 펼쳐진다. 결혼은 돈이 많고 착한 여자(클로에-에밀리 모티머)와 하고, 격정적인 사랑은 섹시하고 자유분방한 노라와 나누는 크리스. 갑자기 아내 몰래 외딴곳으로 가 전화를 받는 횟수가 잦아지고, 열심이던 회사 일도 뒷전으로 미뤄가면서 까지 노라와의 사랑에 몰두한다. 그러나 사랑 때문에 허울밖에 남지 않은 가정이지만 버릴 수도 없다.
이처럼 바람을 피울 때의 레퍼토리와 남자가 겪는 갈등의 양상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서로 비슷하다는 사실에 피식 웃음마저 나온다.
그러나 영화는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라는 한 가지 명제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즐거운 두뇌 운동을 시켜준다. 제목인 '매치 포인트'는 탁구 등 구기 종목에서 한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는 마지막 점수 하나를 말한다. 크리스는 부잣집 딸 클로에와 결혼함으로써 자기 인생 첫 번째 경기는 승리로 장식하지만, 마지막 클로에와 노라 가운데서 내린 결정이 네트를 넘어갈지 못할지에 대해서는 긴박하고 흥미롭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인생의 매치 포인트'에 대한 노장 앨런의 위트와 철학이 엿보인다. 지지직거리는 정겨운 소음과 함께 곳곳에 삽입된 카루소의 곡들은 귀를 즐겁게 하는 보너스. 다만, 남성팬들로서는 요한슨의 '노출 수준'이 만족스럽지 못할 수도 있겠다. 13일 개봉 예정.
(스포츠조선 김천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