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판 내리 졌지만 마음을 비우니 뒤집기가 보이네요"

이제 다음주면 서울 한복판에서 구리(古力·23) 선배와 다시 마주 앉게 되는군요. 제10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 5번기 3~5국을 두게 되죠. 3월에 벌어졌던 1, 2국에서 두 판을 다 졌으니 남은 세 판을 모두 이기지 않는 한 그렇게도 염원했던 우승은 물 건너 갔습니다. 어쩌면 4, 5국은 두어볼 기회조차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이번 결승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선배의 우승을 점치면서도 나 천야오예(陳耀燁)에 주목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1989년 12월생인 내가 우승할 경우 이창호의 세계 대회 최연소 제패(92년 제3회 동양증권배·16세 6개월) 기록을 2개월이나 경신하게 되기 때문일 겁니다. 세계 메이저대회 우승자에게 九단을 주는 중국 규정 때문에 대회가 끝나면 둘 중 한 명은 九단에 오르죠. 내가 이길 경우 세계 최연소 九단이 된다는 것도 구경거리인 모양입니다.
0대2에서 3대2 뒤집기, 엄청나게 힘든 일입니다. 산술적 확률도 8분의 1(12.5%)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구리 선배는 중국 랭킹 1위답게 국내 4관왕으로 한창 맹위를 떨치고 있지 않습니까. 아직 타이틀 1개(전국개인전), 14위에 불과한 나로선 벅찬 상대임을 인정치 않을 수 없습니다. 나도 전투라면 자신이 있건만 1, 2국에선 접근전에서 득을 보지 못했죠.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패였습니다.
하지만 그 두 판이 완벽한 실력의 결과물이었다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굳어있었는지 나 스스로 이해할 수 없더군요. 특히 포석 감각은 낯뜨거울 정도였습니다. 3국부터는 편한 마음으로 한 판, 한 판을 두어갈 각오입니다. 그러다 보면 추격의 실마리도 잡히지 않겠습니까? 특히 3국의 포석 주도권은 흑 차례인 내게 있습니다. 천하의 이창호도, 현역 국제 2관왕이라는 이세돌도 내 앞에서 무릎 꿇는 장면을 보셨을 줄 압니다.
지난 2001년 제5회 LG배 결승 때 이창호는 이세돌에게 0대2로 뒤지다가 3대2로 역전 우승했다지요. 당시에도 처음 두 판과 나중 세 판 사이에 한 달여의 간격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시차가 흐름을 바꾼 것이죠. 40일 전 결승 1, 2국을 패했을 때는 무척 분하고 아쉬웠었는데 지금은 담담합니다. 만약 구리 선배가 그때의 이세돌처럼 서둔다면, 나라고 해서 대역전의 주인공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겁니다.
우리 중국은 올 들어 삼성화재배 정관장배 강원랜드배에 이어 LG배에서까지 우승하는 경사가 겹치고 있지요. 그중 LG배에선 내가 주역을 맡겠다는 꿈을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국제전 성적 9승 1패, 중국 리그 다승 승률 통합 1위(16승 6패)에 올랐던 기세를 꼭 계속해 보이고 싶습니다. 17, 19, 21일 내자동 주한 중국 문화원. 소표(小豹) 그룹의 리더인 내 마음은 벌써 그곳을 향해 날갯짓을 시작했습니다. 선배님의 건투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