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접하는 성장痛 영화 '피터팬의 공식'

데뷔하는 감독에게 바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피터팬의 공식(13일 개봉)’의 조창호 감독에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 지 아는 화술이 있다. 눈을 빛내는 아이디어는 있지만 손이 앞서는 잔재주는 없다. 스타일에 과욕을 부리지 않는 듯 하다가도 결정적 순간엔 힘주어 인장을 찍는다. 무엇보다 그는 첫 작품에서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리듬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이제 막 경력을 시작한 감독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재능이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 한수(온주완)는 촉망받는 수영 선수. 그러나 전국체전을 앞두고 회의를 느껴 수영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한다. 음독 자살로 식물인간이 된 어머니를 간호하던 그는 옆집으로 이사온 여고 음악 교사 인희(김호정)에게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다.
성장은 이루는 게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 노력의 보상이라기보다는 고통의 댓가에 더 가까울 성장은 폭압적인 시간의 속성을 반복 학습시킨 끝에 불현듯 찾아온다. 많은 성장영화가 성장을 거부하는 소년 소녀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경제적 고민에서 진로와 성(性)에 대한 갈등까지, 스무살을 앞둔 한수에겐 세상이 온통 안개 바다와 같다. 해야 할 일에 둘러싸여 허덕이는 상황에서 정작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한수에게 성장이란 수영을 그만두고 학교를 자퇴하며 피터팬의 공식대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네버랜드에 숨으려 해도 막을 수 없는 세상의 규칙 같은 것이다. 감독은 출발선에 올랐을 때 갑자기 수영장의 물이 다 사라질 것 같은 상상에 시달리는 한수의 두려움을 통해 성장의 공포를 선명히 요약한다.
이 영화에서 어떤 형식은 인위적이고 어떤 설정은 관념적이다. 모자라는 부분은 별로 없어도 넘치는 부분은 자주 발견된다. 어머니의 자궁으로 회귀하고 싶은 한수의 심리를 직설적인 상징과 대사로 처리한 종반부에서는 메시지를 관객들 손에 기어이 쥐어주려는 연출자의 조바심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엔 간결하고 담백한 영상 속에서도 열아홉 소년의 감정이 생생히 살아 있다. 극중 여자들이 한수 곁으로 다가갈 때 소리를 내지 않고 손가락으로 어깨를 살며시 건드려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 ‘피터팬의 공식’은 어느새 보는 이의 가슴 속으로 슬며시 걸어 들어와 말을 건다. 충무로에서 오랜만에 접하는 성장영화의 그윽한 향취. 어쩐 일일까. 쓸쓸하지만,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