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도굴꾼’으로 관객 사로 잡을까

그는 까만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타났다. 1년 365일 중에 300일은 ‘추리닝’ 입고 다닌단다. “그냥, 편해서요.” 멋 부리는 데는 재능도 없고 관심도 없다. “배우로서 신비감이나 매력이 필요하다는 거 알지만 많이 생각해봤는데 배우는 연기 잘 하면 되는 거더라고요. 지금 그것도 잘 못하는데… 밥 태워먹고 반찬 신경 쓸 수는 없잖아요.”
‘아는 여자’ ‘웰컴 투 동막골’ ‘나의 결혼 원정기’에서 묵직한 연기를 보여줬던 배우 정재영(35). 이번엔 ‘문화재 도굴꾼’으로 나타났다. ‘마이 캡틴, 김대출(20일 개봉)’은 아이들 손에 들어간 보물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도굴꾼 김대출의 이야기. 사심(邪心)을 갖고 접근했지만, 결국 아이들과 진한 사랑을 나누는 캐릭터다. 정재영은 굴에 갇힌 꼬마를 구하는 장면에서 진짜 흙을 먹고, 손으로 흙을 파다 부상을 당하는 등 몸을 아끼지 않는 열연을 펼쳤다.
고등학교 연극반을 시작으로 연극에 몰입하다 영화에 본격적으로 출연한지는 딱 10년. 4년 전까지 그가 맡은 역할을 죽 훑어보면 피식 웃음이 난다. ‘불량배 역’(박봉곤 가출 사건) ‘캬바레 손님 역’(초록물고기) ‘제비 역’(조용한 가족)부터 ‘낯익은 기사 역’(기막힌 사내들) ‘잔머리 택시강도 역’(간첩 리철진) ‘전처 남편 역’(복수는 나의 것), ‘돈 뺏는 고교생1 역’(묻지마 패밀리)까지. “뭐, 최근 맡은 홍만택(나의 결혼 원정기)이나 김대출까지…. 있어 보이는 이름은 하나도 없네요 하하.”
단역배우 시절이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안 힘든 사람보다 힘든 사람이 더 많았으니까 기다리는 게 어렵진 않았어요. 배우로서 본분을 지키고 연기력 쌓다 보면 인정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요.”

우스개 소리였지만, 그는 인터뷰 내내 “저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보시는 모습 그대로가 그냥 저에요”라고 했다. 텔레비전엔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나가봤자 혐오감만 일으키죠 뭐, 후줄근해서… 후훗.” 드라마에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 ‘드라마’라는 장르를 잘 몰라 저어하고 있다고 했다.
‘아는 여자’같은 멜로를 다시 찍는다면 어떨 것 같으냐는 물음에는 “일단 배우가 잘생기지 않기 때문에 남자로서 멋있다는 말은 못 듣겠지만 진심은 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못생겼어도 저 사람의 진심을 다 알면 좋아지는. 최소한 연민은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라며 웃었다.
시종일관 ‘자학 개그’다. 실제 그의 팬 90% 이상이 여성인데도, 그는 자신을 낮춘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남자다운데, 소심한 구석도 있다. 어떨 땐 개구쟁이 같고 한편으론 참 진지하다. “사람들의 그런 ‘양면성’이 좋아요. 겉으론 나빠 보이는 사람도 남이 모르는 속사정, 따뜻한 면이 분명 있더라고요.” 대학 시절 지하철에서 술 취한 중년아저씨가 실수를 하자, 친구의 토사물을 손으로 주워 담고 승객들에게 사과하는 남자를 본 적이 있다. “처음엔 술취한 그저 그런 아저씨들로 봤는데, 그렇게까지 남들을 배려하다니. ‘아, 똥 밟았다’고 생각한 제 자신이 부끄럽고 숙연해지더라고요. 그 사건은 나중에 꼭 연기에 응용할 거예요. 방송국에서 그 노신사를 찾아갔더니 ‘어, 잘 기억이 안나는데…’하더라는 뒷얘기를 붙여서요 하하.” 잘 나가다가 또 엉뚱해진다. 장진 감독 식의 유머와 코드가 맞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사람을 통해 연기를 배웠고, 연기를 통해 사람을 배웠다. 그래서 이제 어떤 누구에 대해서도 선입관을 갖지 않는다. “지금은 (편견이) 없어요, 아무것도.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지 않고서는요.” 정재영 역시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예단할 수 없는 그런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