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천 년의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던 고도(古都) 경주는 봄볕이 짙어지는 4월이 되면 도시 전체가 커다란 벚꽃동산으로 변한다.
신라인의 정신적 지주였던 남산 가는 길도, 신라 천 년의 넋이 묻힌 대릉원 담길도, 불국사에서 석굴암으로 이어지는 산길도, 보문단지 호숫가도 온통 벚꽃으로 뒤덮인다. 꿈길처럼 펼쳐지는 연분홍 꽃구름 속에 들면 신라의 봄은 천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나그네의 가슴을 적신다.
경주의 사계 중 가장 빼어나다는 봄날, 그곳에선 ‘한국의 술과 떡 잔치’가 펼쳐진다. 그 흥겨운 판에서 노닐다가 경주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남산 유적답사도 곁들여보자.
전국엔 수많은 축제가 있다. 대부분 지역 전통을 살리거나 아름다운 자연에 기댄 것들인데, 그 축제 중 결코 빠질 수 없는 게 다름 아닌 먹거리장터다. 실속 없는 어떤 축제는 가끔 본말이 뒤바뀌기도 해 ‘먹고 마시는 데만 정신이 팔린 축제’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매년 봄마다 신라 천 년의 고도 경주에서 열리는 ‘한국의 술과 떡 잔치’는 이런 먹거리가 당당하고도 화려하게 주무대로 승격한 축제다.
우리의 잔칫상에 꼭 올라온 술과 떡은 단순한 마실 거리와 먹거리가 아니었다. 잘 익은 술엔 흥겨움과 신바람과 멋이 담겨 있었고, 맛있는 떡엔 순후한 인심과 여유가 묻어있었다. 술과 떡, 거기엔 이 아름다운 산하에서 누천년 살아온 한민족의 심성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매년 봄마다 열리는 ‘경주, 한국의 술과 떡 잔치’ 행사장은 말 그대로 잔칫집 분위기다.
올해의 잔치는 ‘세계 속의 우리의 맛·멋 그리고 흥’이란 주제로 4월15일(토)부터 20일(목)까지 6일간 열리는데, 장소는 그동안 열렸던 보문관광단지 근처의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이 아니라, 경주시 북쪽 끝에 있는 황성공원(皇城公園) 일원이다. 신라시대 화랑들의 훈련장이었다는 황성공원은 주변이 널찍해서 방문객들이 아무리 몰려들어도 번잡스럽지 않아서 좋다. 아쉬운 점은 축제가 열리는 4월 셋째·넷째 주는 경주의 봄을 밝히는 벚꽃이 모두 져버린 뒤라는 사실이다. 경주의 벚꽃은 보통 4월 초순에 만개한다.
잔칫집 분위기 물씬 풍기는 행사장
떡은 곡식가루를 반죽해 찌거나 삶아 익힌 음식으로, 농경문화의 정착과 역사를 함께 해온 우리의 대표적인 전통 음식이다. 떡을 워낙 좋아하고 잘 해먹는 한국인에게 있어서 떡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었다. 태어나 살면서 시식(時食)·절식(節食)·통과의례식 같은 의례 때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던 정감 어린 음식이었다. 또 대물림으로 전해오는 손끝의 정성으로 긴 세월을 이어온 떡은 술과 함께 기쁘거나 슬픈 날 찾아오는 손님에게 대접하는 그 집안 정성의 표시이기도 했다. 나눔의 미덕이 흠뻑 담긴 음식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떡은 외국 브랜드 식품산업의 급격한 진입과 우리 입맛의 변화로 전통의 빛깔이 점차 퇴색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다행히 현대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떡맛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최근 계속되면서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도 전통적인 떡과 함께 현대화된 떡이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이런 떡은 입맛이 서구화된 젊은이들에게도 인기가 있다 한다.
이런 분위기는 술과 떡으로만 매년 30~40만 명의 손님을 끌어 모은다는 저력에서 충분히 감지된다.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이부터 팔순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행사장을 찾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이삼십 대 젊은층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떡 실물로 다채로운 변화를 모색한 행사장 내의 떡 전시관을 찾아서도 두 눈동자를 빛내며 깊은 관심을 보인다.
떡 부스엔 전국 각 지방에서 명예를 걸고 올라온 60여 종에 이르는 전통 떡이 나온다. 경주 지역의 대표적인 부편과 시루떡을 비롯해 찹쌀떡, 예쁜 각색꽃절편, 쑥내음 향긋한 쑥떡, 진달래와 벚꽃으로 예쁘게 장식한 화전, 아이들에게 인기 좋은 찹쌀꿀떡, 이 외에도 곰치떡·호박떡·송기절편 등등 떡의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다.
통과의례 10대 상차림도 전시한다. 대부분 전국의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은 작품들이니 서라벌 잔칫집의 품위를 높이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는 준비라 할 수 있다. 물론 경주와 자매도시인 일본의 우사시, 간자키정, 그리고 중국 서안시의 전통 떡을 위한 특별 부스도 매년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떡집 앞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의 표정도 가지각색이다. 진달래꽃 예쁘게 박힌 화전에 먼저 손이 가는 아가씨, 평소 먹고 싶었던 떡을 느긋하게 살펴보는 아주머니, 이 떡 저 떡에서 추억을 건지는 할머니, 그 옆에서 아무 떡이나 고르라고 채근하는 할아버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을 만들며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는 떡집 아주머니들의 미소도 넉넉하다.
행사장에서 손님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떡 관련 행사로는 떡메치기·가래떡 썰기·누룩 디디기·화전 만들기·떡 만들기 등이 있는데, 이중 떡메치기는 잔칫집을 찾은 손님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이벤트로 꼽힌다. 떡칠 때는 처음엔 쌀이 튀지 않게 살살 달래가며 콩닥콩닥 두드리다 좀 끈기가 돌 때 철썩철썩 소리가 나도록 쳐야 한다. 떡이 다 되면 구경꾼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다. 이외에도 올해엔 ‘전국창작 떡만들기 대회’가 처음으로 열린다고 하니, 떡에 관심이 많거나 떡 만들기에 자신이 있는 이라면 한번 신청할 만하다.
전통주 부스엔 술 향기 가득
잔칫집에서 술은 필수다. 올해 출품될 전통주는 모두 70여 종.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로 경주 특산물인 교동법주에서부터 경기 문배주, 가야곡 왕주, 한산 소곡주, 안동 소주, 전주 이강주, 진도 홍주, 감악산 머루주뿐만 아니라 백두산 들쭉술 등 북한에서 온 술도 눈에 띈다. 이 땅의 내로라하는 명가명주는 다 모인 셈이다.
술 익은 냄새를 맡은 꾼들은 전통주 전시장 길목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벌써 잔뜩 기대에 부푼다. 이런 자리가 아니면 어떻게 전국의 명주들을 한 자리에서 다 구경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한두 잔은 그냥 마셔도 되는 ‘공술’이다. 행사장 도우미가 직접 따라준다. 안주가 없는 게 아쉽지만 떡 부스에서 사온 떡을 배낭에서 꺼내면 된다. 옛말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술은 바로 공술’이라고 했던가? 누가 여기서 공술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남산을 답사한 다음 이곳에서 하산주를 하면 딱 좋을 듯한데….
올해의 흥미로운 이벤트는 술 담그기. 그런데 그냥 담가서 마시는 게 아니라, 폐막식 때 타임캡슐에 보관했다가 1년 뒤인 이듬해 개막식에 개봉해 관광객들과 함께 축배를 들면서 시작할 예정이라 한다. 애주가라면 분명 입맛 다시는 일이겠지만, 이는 올해 처음으로 시작한 이벤트라 이번 개막식 때엔 아쉽게도 맛볼 수가 없다.
경주에서 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포석정이다. 경주 남산 서북쪽에 있는 포석정을 올해부턴 행사장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경주의 석공 명장인 윤만걸 선생이 포석정의 모형을 제작해 행사장에 설치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포석정에 물을 흐르게 하고 술잔을 띄운 후 경주에 관계된 문제를 낸 다음 선택된 관광객에게 그 술잔을 들게 한다면 분명 큰 이목을 끌 것 같다.
경주시청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관광객에게 편의를 최대한 제공하기 위해 술과 떡 부스를 서로 인접한 곳에 설치해 관람객이 동선을 그리는 데 불편하지 않게 배려했다”며 와서 마음껏 즐기라는 말을 당부했다. 서라벌에서 펼쳐지는 술과 떡 잔치가 정말로 기다려진다.
#숙박
황성공원 주변은 주택지라 숙박시설이 없다. 축제장에서 가장 가까운 시설지구는 경주 시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보문관광단지다. 이곳엔 호텔과 콘도·여관·민박집 등이 넘쳐난다. 불국사 지구에도 숙박업소가 많다. 이외에도 경주 시내와 동해바다가 보이는 감포 부근에도 숙박시설이 있다.
펜션포에버 : 보문단지 안의 남촌 마을에 있다. 행사장에서 승용차로 약 10분 거리. 8평형(3실)짜리 커플룸은 비수기 주중 60,000원, 주말 80,000원이고, 성수기엔 항상 80,000원이다. 10평형(2실)짜리 패밀리룸은 비수기 주중 80,000원, 주말 100,000원. 성수기는 항상 100,000원. 전화 054-743-0170 www.pensionforever.com
펜션미루 : 보문단지 안의 북군 마을에 있다. 외향은 전통 한옥인데, 내부는 생활에 편리한 콘도형으로 꾸몄다. 뒷산과 앞뜰의 시골스런 정취 때문에 인기 있다. 10평형 평일 50,000원, 주말 70,000원, 15평형 평일 100,000원, 주말 120,000원. 전화 054-748-9897 www.mi-ru.co.kr
#별미
팔우정해장국 : 경주역에서 박물관쪽으로 4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팔우정 로터리엔 팔우정해장국(054-742-6515) 등 20여 해장국 전문집들이 모여 있다. 이곳의 해장국은 일반 해장국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내려온 경주식이다. 물명태와 멸치로 우려낸 맑은 국물에 신선한 콩나물과 묵, 그리고 갖은 양념을 첨가하여 차린다. 1인분 4,000원.
황남빵 : 경주에서 가장 유명한 먹거리는 어쩌면 황남빵일 것이다. 자그마한 팥빵인 황남빵은 1939년 경주최씨 최영화옹이 황남동에서 처음 만들었는데, 조상 대대로 집안에서 전해오던 비법으로 황남빵을 탄생시켰다. 인공감미료나 방부제가 전혀 안 들어가 맛이 부드럽다. 대릉원 바로 옆에 황남빵(054-749-7000 www.hwangnam.co.kr) 본점이 있다.
#교통
서울→경주 강남터미널에서 매일 30~40분 간격(06:30~19:00) 운행, 심야 2회(23:40 24:20) 운행. 4시간20분 소요. 요금 일반 16,300원, 우등 24,200원, 심야 26,600원.
부산→경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매일 30~40분 간격 운행, 1시간30분 소요, 요금 3,900원.
대구→경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매일 20~30분 간격(06:40~21:10) 운행. 50분 소요, 요금 일반 3,300원, 우등 4,800원.
광주→경주 고속터미널에서 매일 2회(09:40, 16:40) 운행. 3시간30분 소요, 요금 일반 13,800원, 우등 20,400원.
대전→경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매일 4회(07:00~18:30) 운행. 2시간40분 소요, 요금 일반 10,600원, 우등 15,500원.
서울역→경주역 매일 새마을호 2회(07:40, 17:40), 무궁화호 1회(22:37) 운행. 새마을호 4시간30분 소요, 요금 33,700원. 무궁화호 5시간10분 소요, 요금 22,700원.
드라이브 코스 : 경부고속도로(구) 경주 나들목→4km→사거리(좌회전)→7번 국도(시내 방면)→4km→황성공원(술과 떡 잔치 행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