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따라 가는 산행] 경주 남산

“물론, 삼릉계곡 코스가 최고지요.”

경주 남산의 최적 코스를 소개해달라고 하면 경주를 잘 아는 지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삼릉계곡(냉골) 코스를 추천했다. 먼 지방에서 경주 남산을 찾은 등산인이라면 우선 이 코스를 걸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남산을 오르지 않고선 경주를 알 수 없다”

경주시 남쪽에 솟은 남산(南山·494m)은 500m가 안 되는 나지막한 산이지만 신라인들이 천 년간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온 산이다. 이 산은 한 마리의 금거북이 서라벌 깊숙이 들어와 편안히 앉아 있는 형상이라 해서 금오산(金鰲山)이라고도 불렸다. 이 이름은 남산의 한 봉우리인 금오봉으로 남아있다.

신라 사람들은 석가가 56억7천만 년 뒤에 나타난다는 용화세상의 약속을 믿고 남산에 기러떼처럼 수많은 탑들을 세웠다. 그리고 돌마다 부처를 새기고 터마다 암자를 지어 자신들의 발원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남북 8km, 동서 4km로 남북으로 길게 뻗어내린 타원형이면서 남쪽으로 약간 치우쳐 정상을 이룬 직삼각형 모습을 취하고 있는 남산은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44계곡과 180봉을 안고 있다.

여기엔 보물 13점, 사적 13개소, 중요민속자료 1개소 등 지정문화재만 44점이고, 왕릉이 13개소, 산성터가 4곳, 불상이 118체, 탑이 96기, 석등이 22기, 연화대가 19점 있다. 또 절터가 147곳, 왕릉이 13기, 산성터가 4곳 등 구석구석마다 유물유적이 널려있는 ‘산속 박물관’이다. 정일근 시인은 이 산을 일컬어 ‘신라 사람들의 마음을 담고 흘러가는 한 척의 배’라고 했는데, 참으로 정확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남산은 자연경관도 빼어나다. 바위가 적당히 있고 숲도 제법 짙다. 능선길엔 조망 좋은 포인트도 제법 많다. 이렇듯 자연의 아름다움에다 신라의 오랜 역사, 신라인의 미의식과 종교의식이 예술로서 승화된 곳이 바로 남산인 것이다. 그래서 경주 전문가들은 이렇게 귀띔한다. “남산을 오르지 않고 경주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삼릉계곡 코스가 가장 무난

남산에는 70개쯤의 등산로가 있다. 그 산길들의 정점은 언제나 금오산과 고위산이다. 어느 계곡에서든지 쉽게 정상에 오를 수 있고, 어느 코스로 가나 석불과 탑을 볼 수 있다. 설혹 길을 잘못 든다 해도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길이 잘 나있다. 또 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다녀올 수 있다. 추천을 받은 삼릉골(냉골) 코스를 포함해 남산의 웬만한 코스는 모두 3~4시간 정도면 왕복으로 답사가 가능하다.

편안한 마음으로 삼릉골 코스로 들어섰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삼릉계곡 초입의 솔밭으로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졌다. 적당히 굽은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빼곡한 솔밭엔 그윽한 솔향이 가득했다.

삼릉 앞에서 ‘상선암 1330m' 이정표를 따른다. 삼릉계곡은 남산 최고의 인기 코스답게 금오봉 정상까지 이정표와 안내판이 매우 잘 설치되어 있다. 솔밭 사이로 난 산길은 산책로처럼 완만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오순도순 산책 삼아 나온 가족들 모습도 많이 보인다.

산길은 계곡을 끼고 이어진다. 잠시 샛길도 들어섰다가 머리 없는 석불 좌상을 만나고 오면 이번엔 선각육존불이 손짓한다. 등산로에서 ‘선각육존불 120m’ 이정표를 따라 작은 샛길로 들어가면 극락으로 왕생하는 중생을 맞이하는 아미타여래 부처님이 반긴다.

바위 자체의 굴곡과 틈이 이루어낸 무늬와 부처를 선으로 그린 석공의 솜씨는 자연스런 맛이 있다. 선각은 정교하지만 날씨와 태양의 각도에 따라 부처의 모습이 명암을 달리한다. 이 부처는 원래 선각으로만 된 것이 아니라, 채색을 하기 위한 밑그림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샛길은 다시 등산로로 이어진다. 계곡을 건너자 산길은 조금씩 가팔라진다. 그래도 숲 짙고 공기 맑으니 기분이 상쾌하다. 상선암이 가까워지자 독경소리가 들려온다. 삼릉을 출발한 지 1시간만에 상선암에 도착했다. 여염집 같은 암자는 바둑바위와 상사바위를 등지고 있어 경치가 좋다.

상선암에서 금오봉으로 가려면 암자 장독대와 커피자판기 사잇길로 오른다. 80m 정도 오르면 마애석가여래좌상이 반긴다. 7m 크기의 이 불상은 삼릉계곡에서 가장 큰 석불이라 흔히 마애대불좌상이라 한다. 얼굴은 돋을새김으로 원만하게 다듬었으며, 몸은 억센 선으로 그렸고, 연화대좌는 부드럽고 희미한 선으로 처리했다. 이 부처님은 남쪽의 금오봉을 보고 계신데, 주변 조망도 좋고 소원도 잘 들어주는 덕인지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곳에서 이내 바둑바위와 상사바위 안부에 이른다. 바윗덩이 뒤덮인 산길이 참 아름답다. 과연 남산 제일의 명소답다. 상사바위에서 능선을 따라 평탄해진 능선길을 따르면 이내 터가 펑퍼짐한 정상이다. 삼릉 입구에서 1시간40분 정도 걸렸다. 이는 등산로에서 샛길로 빠지면서 이런저런 부처님까지 뵙고 온 시간을 합친 것이니, 산행만 한다면 1시간10분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금오봉 정상에서 삼릉이 있는 서쪽으로 하산하는 방법은 서너 가지가 있다. 우선 올라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는 방법이다. 이는 일반인들이 가장 애호하는 코스지만, 멀리서 벼르고 온 등산인이라면 꽤 섭섭하다. 그 다음으로 많이 이용하는 코스는 정상에서 서릉으로 내려서다 작은 냉골로 빠지는 회귀코스와 약수골로 코스다. 모두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

남산을 자주 오를 수 없는 이라면 짧은 시간에 두루 둘러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금오봉 정상에서 순환도로로 내려가다 금오정~늠비봉 5층석탑~부엉골~포석정을 들른 뒤 배리 삼존불을 보고 삼릉으로 회귀하는 코스를 걷기로 했다. 석양 무렵이면 황금빛을 발하는 부엉골 마애여래좌상, 옛 절터에 새로 세운 부흥사, 늠비봉 바위를 기단으로 한 백제 계열의 늠비봉 5층석탑 등을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순환도로가 보이는 동쪽으로 30m 정도 내려서면 간이화장실이 있고, 작은 암봉엔 관광일주도로 준공기념비가 서있다. 여기서 순환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내려간다. 이 코스는 힘들거나 위험한 구간은 없지만 삼릉계곡과 비교하면 이정표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편이다.

남산 곳곳엔 진달래나무가 유달리 눈에 많이 띈다. 경주 시내의 벚꽃은 보통 4월 초순에 꽃을 피우기 때문에 ‘경주 술과 떡 잔치’가 열리는 15일 이후엔 대부분 져버린 상태일 것이다. 그러나 그 시기에 산속엔 붉은 진달래꽃이 활짝 피어난다. 바로 경주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경주 남산의 환상적인 정취다.

기념비에서 20분만에 만난 금오정은 콘크리트로 지은 정자다. 여기서는 동쪽의 토함산과 북쪽의 경주 시가지, 서쪽의 호남정맥 단석산까지 널따란 옛 서라벌 권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여기서 다시 순환도로를 따라 갈 수도 있지만, 순환도로는 사실 편하긴 해도 걷는 재미가 조금 덜하다. 여기서 늠비봉으로 내려서는 좁은 오솔길로 내려선다. 5층석탑을 보고 부엉골로 하산하기 위해서다.

늠비봉 5층석탑은 달빛 산행의 단골

금오정에서 채 10분도 되지 않아 부흥사(富興寺) 바로 앞에 솟은 늠비봉에 도착한다. 이곳엔 자연암반을 다듬어 기단으로 삼은 5층석탑이 서있다. 먼 서쪽으로는 배리평야와 선도산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해목령을 마주하며 서라벌이 한눈에 펼쳐진다. 조금 전에 지나온 금오봉 전망도 좋았지만, 석탑과 어우러진 맛을 어찌 콘크리트 정자가 따라오랴. 남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매우 좋아하는 명당 중 하나다.

경주 남산연구소(054-745-2771 www.kjnamsan.org)에서 주최하는 ‘남산 달빛기행’이란 게 있다. 매달 보름을 전후한 주말마다 산행하는데, 바로 여기 늠비봉 5층석탑에서 보름달을 감상하는 게 행사의 핵심이다. 달빛기행 시간은 19:00~23:30으로 4시간 안팎이다.

간단한 산행복장에 가벼운 간식거리 등을 준비하면 되지만, 아쉽게도 4월 기행은 ‘경주 술과 떡 잔치’가 열리기 1주일 전인 8일(토)이다. 그렇다 해도 개막식이 있는 15일(토)은 음력으로 열여드렛날이니 달이 이지러지긴 했어도 달빛은 좋을 것이다. 사정이 허락한다면 달빛기행을 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우람한 오층석탑에서 불을 밝힌 경주 시가지를 바라보면 경탄이 절로 나온다는 게 경험자의 전언이다.

5층석탑을 지나 내려서는 부엉골은 너무도 호젓했다. 골이 너무 깊어 낮에도 부엉새가 울 정도로 깊다 해서 부엉골이라 부른다는 이 계곡은 그래도 맑은 기운이 흐른다. 남산8경 중 하나다. 산길은 맑은 계류와 바싹 붙었다가 계류를 넘나든다. 마지막에 만나는 솔밭도 좋다. 평탄한 솔밭을 심호흡하며 걷다보니 아까 금오정에서 헤어졌던 순환도로와 다시 만난다. 늠비봉을 떠난 지 20여 분만이다.

여기서 10분쯤 내려서면 포석정. 돌홈이 전복껍질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포석정(입장료 500원)은 신라왕과 귀족들이 유상곡수연을 즐기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 술잔을 띄워 천천히 물을 따라 돌게 만들었는데, 술잔이 오는 동안 시를 짓지 못하면 벌주를 마셨다고 한다. 최근엔 나라의 번영을 천신에게 제사지내던 곳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경애왕이 이곳에 있던 것은 왕건에게 구원을 요청하고, 포석사에 나가 천신에게 제사지내다 변을 당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포석정에서 삼릉까지는 35번 국도를 따라가는 것보다 나지막 구릉쪽으로 난 횡단 산길을 이용하는 게 좋다. 이 길은 지마왕릉을 지나 천진스런 웃음으로 반기는 삼불사의 배리 삼존불을 거쳐 삼릉까지 이어진다. 도중에 이정표가 없어 갈림길에서 조금 헷갈리기도 하지만, 횡단하듯 계속 앞으로만 나가면 삼릉 입구다.

#산행길잡이
경주 남산엔 70여 가닥의 등산로가 있다. 그 산길들의 정점은 언제나 금오산과 고위산이다. 어느 계곡에서든지 쉽게 정상에 오를 수 있고, 어느 코스로 가나 석불과 탑을 볼 수 있다. 이중 가장 일반적인 삼릉계곡(냉골)은 석불 순례를 겸한 가족산행으로 가장 적합한 코스다.

이번에 답사한 삼릉~삼릉계곡~상선암~금오봉~사자봉~금오정~늠비봉 5층석탑~부엉골~포석정~배리 삼존불~삼릉 회귀코스는 3시간30분~4시간 정도 걸린다. 삼릉 주차장은 2,000원이고, 입장료는 없다.

#맛집
삼릉고향칼국수 : 삼릉 옆에 있는 삼릉고향칼국수(054-745-1038)는 이 일대에 많이 있는 칼국수촌의 원조집이다. 순수 우리 밀로 만든 밀가루에 콩가루를 약간 섞어서 칼국수를 만든다. 우리 밀의 구수하고 소박한 맛이 은은하게 감겨든다. 칼국수와 곁들이는 수육, 도토리묵, 동동주 등도 별미다. 칼국수 1인분 4,000원.

#교통
경주→삼릉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500, 503, 505, 506, 507, 508번 시내버스가 30분 간격(06:30~10:00) 운행. 요금 1,300원. 20분 소요. 드라이브 코스 : 경부고속도로 경주 나들목→2.4km→사거리(우회전)→35번 국도(언양 방면)→2.5km→삼릉 입구 주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