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많아졌다지만… 스스로 예술 한다는 자부심 있어야 해”

“가까이 와요, 내가 귀가 좀 어두우니까….”
유현목(兪賢穆·81) 감독과의 인터뷰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보청기에 의존한 쇠락한 청력 탓만은 아니다. 단답형 질문 하나에도 노(老) 감독은 서술형으로 유장하게 답했다. “내가 감독상만 마흔세 개를 받은 사람이오. 하지만 오늘은 각별하군요. 동국대는 사랑하는 나의 대학이고, 충무로는 내가 청·장년기를 보낸 곳이니 말입니다. 상 받아서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 기분이 좋아요.”
지난 8일 서울 명보극장. 3일간 열린 ‘충무로 열린 영화 축전’의 마지막 날, 유현목 감독을 위한 특별한 순서 하나가 마련됐다. 동국대 영화인 후배들이 준비한 공로패 헌정식과 그의 대표작 ‘오발탄’ 상영 행사다. ‘축전’은 동국대 개교 100주년을 기념, 양윤호 감독의 ‘홀리데이’ 등 동국대 출신 영화인의 작품 9편을 일반 시민에게 무료 상영하는 소박한 영상 축제. 유 감독은 해방 직후 동국대 국문과에 입학했고, 유하 김성수 모지은 등 수많은 후배 감독들을 길러냈으며, 대표작 ‘오발탄’ 등 41편의 작품을 통해 한국영화의 대표적 이름으로 존경 받고 있는 감독이다. 신상옥 김기영 이만희 감독이 세상을 떠난 지금, 6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기의 거의 유일한 증인이기도 하다. 민병록 영상대학원장의 부축을 받고 무대에 오르는 대선배에게 후배·제자들은 모두 일어서서 예의를 갖췄다.
전쟁 직후 무너져 가는 한 가족의 비극을 리얼리즘 시선으로 다룬 ‘오발탄’(1961)은 대부분의 영화평론가들이 ‘한국 영화의 대표작’으로 꼽는 작품. 스스로의 평가를 묻자, “당시 인텔리 관객들은 한국영화를 시시하다고 무시했었어요”라며 서두를 뗀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술이라도 먹어야지 이대로는 못 가겠다고 그러는 거예요. 내가 허투루 만든 건 아니었구나, 뿌듯했었지.”
잠시 쉬었던 담배에 다시 불을 붙이는 그의 표정에 자부심이 스쳐 지나간다. 가난했던 시절의 쓸쓸한 추억도 들려줬다. “우리가 영화 찍던 시절 제작비 상한선은 4만달러였어요. 그거 넘겨 쓰면 감독 자격이 없었지. 요즘은 100억원짜리 영화도 나온다면서요? 가만있자, 그러면 달러로는 얼만가?” (1000만달러라고 알려드리자) “그저 요즘 영화하는 후배들이 부럽기만 하구먼”이라고 감탄한다.
감독은 후배들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쓴소리 하나 하자면, 돈 벌기 위해서 영화감독 된다는 건 근본적으로 틀린 거예요. 새로운 영화미학의 발견이 더 중요한 거지. 충무로에 돈은 많아졌다지만, 스스로 예술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어야 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