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영화 속 ‘일그러진 한국’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우린 가끔씩 신기한 장면을 목격하곤 한다. 한국어나 한국 음식 혹은 한국의 상표 같은 ‘코리안 아이콘’을 만나는 순간이다. 의도적으로 혹은 실수로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게 된 ‘한국적 이미지’들. 하지만 그것을 보면서, 가끔은 살짝 기분 나쁠 때도 있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 ‘크래쉬’<사진>를 본 한국 관객이라면 절대로 잊지 못할 이름이 있다. 조진구. 다인종 도시 LA의 36시간을 담은 이 영화엔 백인을 비롯 수많은 유색인종들이 교차하는데, 그 중에 ‘밀입국 브로커’인 한국인이 있었다. 병원에 실려간 그는 아내에게 수표를 건네며 또렷한 한국어로 말한다. “빨리 은행 가서 캐쉬해와!”
할리우드 영화가 담고 있는 한국 이미지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 아니, 비현실적이거나 편협하다고 해야 옳다. 최소한 영화만 놓고 본다면, 미국인들은 한국인들을 일본인이나 중국인과 견주어 생각하는 듯하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일본인들이 ‘경제 동물’ 혹은 ‘사무라이’로 묘사된다면, 한국인은 ‘편의점 주인’ 혹은 ‘태권도 유단자’다. 프랑스 영화이긴 하지만, ‘택시’에서 24시간 운행되는 택시의 운전사는 한국인이다. 한 명은 트렁크에 있고 한 명은 운전대를 잡는다. 스파이크 리의 ‘똑바로 살아라’에서 폭동에 휩싸이는 한국인은 위기에 처하자 스스로 “나도 흑인”이라며 애원하는 ‘어글리 코리안’의 전형이다.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는 코리아타운을 차이나타운에 버금가는 우범지역으로 설정하는 ‘콜래트럴’ ‘이탈리안 잡’ 같은 영화에서도 나타난다. ‘개목걸이’라는 액션 영화엔 총격전 장면에서 경찰차에 선명하게 한글로 ‘경찰’이라고 써 있다(도대체 이 차를 어디서 구했을까?). 미국 전역에 바이러스를 옮긴 선박의 이름이 ‘태극호’였던 ‘아웃브레이크’는, 한국을 위생상태 엉망인 후진국 정도로 생각하는 듯하다. 기분, 많이 나쁘다.
북한과 관련된 황당 설정도 가끔 눈에 뜨인다. 말 많았던 ‘007 어나더 데이’에서 남한의 예비군 군복을 입은 북한군이 등장하는 장면은 할리우드가 한국에 저지른 최악의 고증. 팀 버튼의 ‘빅 피쉬’에서 ‘구라 10단’인 아버지는 과거 한국전쟁 때 ‘수령님의 비밀’을 입수했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그 문서, 미술부에서 급조한 티가 역력하다. 하지만 가장 엉망인 부분은 역사적 고증이다.
올해 아카데미 평생공로상을 받은 로버트 알트먼이 1970년에 만든 ‘야전병원 매쉬’는 한국전쟁이 배경인데, 베트남인지 한국인지 구분이 잘 안 간다. 미국인들에게 ‘아시아’와 ‘전쟁’이라는 두 단어를 입력하면 ‘베트남전’이라는 답이 출력되나 보다.
최근 할리우드 영화에서 가장 각광 받는 한국 이미지는 바로 대기업들의 로고다. 맨하탄 고층빌딩 숲을 화면에 담는 영화엔 어김없이 한국 기업의 상표가 있다. ‘고질라’에 실수로 등장한 어느 참치캔은 이제 고전이 된 이야기. 이젠 자동차, 핸드폰, 노트북, 텔레비전 모니터 등 영화 속 생활용품 깊숙이 ‘메이드 인 코리아’가 침투한 상태다. 한국 음식도 마찬가지인데 ‘폴리와 함께’ 같은 영화에선 급기야 상추쌈이 등장했다(주인공은 맵다면서 나중에 토하지만).
한편 태권도는 미국인들에게 쿵푸나 가라데 같은, 동양의 신비롭고도 두려운 무술 중 하나로 인식되어 있는 것 같다. ‘베스트 오브 베스트’나 ‘레모’가 대표적인데, 특히 ‘레모’의 백발 성성한 태권도 고수는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고 물 위를 달리는, 무술인이라기보다는 초능력자로 묘사된다.
그렇다면 한국을 좋게 그린 할리우드 영화는 없을까? 꼼꼼히 뒤져 보면 한두 편 나오겠지만, 아직까진 없는 것 같다. 우리가 할리우드에 진출해서 직접 만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날이 오려나?
(월간 ‘스크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