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LG배 세계기왕전] 苦痛의 끝

〈제15보〉(235~265)=희망 없는 바둑을 계속 두어간다는 것은 사실 엄청난 고통이다. 남다른 승부욕이 극기(克己)의 형태로 발현되는 시간이라고나 할까. 자신의 입으로 패배를 선언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그들이다. 수 십 수 째 백이 ‘관성적’으로 바둑판을 메워온 것은 꼭 역전을 이루려는 욕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둑에 콜드 게임이나 심판의 판정 절차가 없다는 건 비극이다.
235로 참고도 1에 두면 하변 백을 잡을 수 있지만 대신 백 2의 맥점을 당한다. 오른 쪽 흑 다섯 점이 뭉텅 떨어져선 흑도 득이 없다. 237의 굴복을 받아낸 뒤 241까지 백의 선수 권리. 245 시점에선 백 ‘가’보다는 하변 246으로 넘어가 사는 쪽이 크다. 그렇더라도 254까지의 구구 도생(圖生)은 너무도 참혹했다.
265가 놓이자 천야오예도 더는 못 버티고 잡았던 돌 하나를 판 위에 올려놓는다. 반면(盤面) 20집이 넘는 대차였다. 아쉬움 가득한 눈망울 속엔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 같은 홀가분함이 함께 녹아있다. 20여 분 간의 복기. 그것은 필도(必倒)의 적(敵)이 동료로 되돌아오는 일종의 화해식(和解式)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