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결단' 늪에 빠진 두남자 먹느냐 먹히느냐

사생결단’은 필름을 체액으로 현상한 것 같은 영화다. 최호 감독은 화면 구도를 짜고 인물 동선을 그려나가는 대신, 화면 한가운데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두 마리 짐승을 풀어놓는 방법을 택했다. ‘사생결단’은 늪 속에 악어와 악어새 그리고 먹이만 존재한다고 말하는 영화다.
독창성보다 완성도 돋보이는 '남성영화' 통제 불가능한 성격의 도경장(황정민)은 마약계 거물 장철(이도경)을 체포하기 위해 마약 판매상 이상도(류승범)의 약점을 잡아 수사에 협조하게 하지만 작전은 실패하고, 상도는 당초 약속과 달리 감옥에 간다. 8개월이 지나 장철의 행방을 파악하는 데 성공한 도경장은 때마침 출소한 상도를 다시 찾는다. 상도는 협조의 대가로 1년간 자신의 ‘영업구역’을 보장해줄 것을 요구한다.
마약 범죄자와 부패한 경찰이 뒤얽히는 영화라면 할리우드만 따져도 한 트럭 분량은 될 것이다. 그러나 ‘사생결단’은 IMF 직후인 1990년대 말 부산의 공기를 생생하게 담아내고 그 속에서 펄펄 뛰는 한국적 인물형을 빚어내 보는 이에게 짜릿한 재미를 준다. 미국과 일본의 범죄영화 고전에 젖줄을 대고 있는 ‘사생결단’은 마틴 스코세지 작품의 갱스터와 아벨 페라라 영화 속 형사를 데려와 한국식으로 변용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야기는 특별할 게 없다. 관객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 도입부에 비해, 이야기 전개에 급급한 중반부는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여겨진다. 내지르고 발산하는 데 집중한 화술 때문에 모두가 즐기기엔 지나치게 빡빡하다. 섹스·폭력·마약 장면에서 처절하리만치 강도 높은 묘사로 일관하는 이 ‘남자 영화’가 여성 관객들까지 사로잡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황정민·류승범 독하고 강렬한 연기 하지만 ‘사생결단’은 캐릭터의 질감과 실감이 그 모든 약점을 상쇄하는 대중영화다. 시종 퍼내는 연기를 하는데도 좀처럼 메마른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두 주연은 가진 게 많은 좋은 배우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주인공인 상환의 10년 뒤 모습을 그려내는 듯한 류승범은 강렬하고 순발력 뛰어난 연기로 하나의 정점에 도달했다. 어떤 배역을 맡아도 온전히 체온이 돌게 하는 황정민은 심드렁하고 어눌한 듯 거칠고 독한 인물을 입체적으로 살려냈다. 감독은 촬영의 각도에서 편집의 리듬까지 시종 화려한 스타일로 두 배우의 연기에 날개를 달아줬다. 독창성보다는 완성도가 돋보이는 이 영화는 소재를 제대로 파악한 연출자가 디테일 아이디어까지 겸할 때 얼마나 강력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 같다. 수갑 하나로 두 인물 사이에 놓인 생과 사의 경계를 선명히 드러내는 클라이맥스 부분은 작품 전체를 요약하는 밀도 높은 이미지다.
도경장에게 협조할 수밖에 없었던 상도는 이렇게 위악적으로 되뇐다. “세상은 늪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악어가 되고, 누군가는 악어새가 된다. 늪을 건너고 또 건너면 나도 언젠가는 악어가 된다.” 그러나 어떤 늪은 끝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악어새에게나 악어에게나, 늪은 그저 늪일 뿐이다. 27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