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소가 점지해준 곳에 경전(經典, 達摩)을 봉안한 미황사(美黃寺)를 에워싸고 있는 달마산을 마주하면 좌선하는 달마대사의 인자한 모습이 뇌리에 스쳐가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달마대사가 인도와 중국을 거쳐 배를 타고 우리나라 해남으로 와 세계에서 이름이 오직 하나뿐이라는 달마산에서 상주했다는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과 송지 달마산악회 김재연 회장의 주장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기 때문일 게다.
두 분은 또 신라 경덕왕 때 인도에서 경전과 불상을 실은 배가 사자포구(현재의 갈두항)에 닿자 의조 스님이 100명의 향도와 함께 경전과 불상을 소의 등에 싣고 가다가 소가 크게 울면서 누운 자리에 통교사(通敎寺)를 짓고, 두 번째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다고 고증까지 해줬다.
경론(經論)의 학문에 의하지 않고 좌선과 문답으로 부처의 깨달음(見性悟道)을 주장하는 달마대사는 중국 선종의 시조로, 남인도 향지국 셋째 왕자로 태어나 대승선(大乘禪)을 재창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소림사에서 9년간 벽을 바라보고 참선(面壁參禪)을 하며 졸음을 참기 위해 눈꺼풀을 잘라버렸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예부터 우리나라 육지 최남단에 봉긋 솟은 달마산과 해남군 송지면 갈두산 사자봉 땅끝마을은 우리나라 지리의 기준이 돼왔고, 일본과 중국을 잇는 해상의 요충지였다.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천태만상의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달마산 암봉이 병풍처럼 미황사를 에워싸고, 설악산 공룡능선을 방불케 하는 암릉이 숨 돌릴 틈도 없이 연이어지며 스릴을 만끽하게 해주며, 그 삼면에는 남해의 푸른 파도가 넘실댄다.
고려 고승 무애대사는 이 산을 일컬어 북쪽으로 두륜산, 삼면은 바다, 송호리에는 송림과 참나무가 울창하고 기암괴석들이 우뚝 솟은 깃발과 같다. 그리고 사자가 찡그리고 하품하는 형상이요, 용호가 발톱과 이빨을 세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며, 멀리서 바라보면 하얗게 쌓인 눈이 공중에 한 발짝 다가서 있는 듯하다고 했다.
육당 최남선은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 리, 서울에서 함북 온성까지 2천리로 잡아 우리나라를 삼천리 금수강산이라 했고, 신증동국여지승람 만국경위도 편에는 우리나라 남쪽 기점을 해남현으로 잡고, 북쪽을 함북 온성현에 이른다는 기록이 보인다.
옥에 티라면 정상에는 함평군청에서 세운 불썬봉과 송지 달마산악회에서 세운 달마봉 이름이 산꾼들을 헛갈리게 한다. 높이도 지형도에는 489m로 나와 있는데 불썬봉 표지석은 481m로 돼 있다. 미황사 주지 스님과 송지산악회 김재연 회장은 한결같이 산 전체를 부를 때는 달마산, 정상은 달마봉, 북쪽 암봉은 관음봉, 남쪽은 도솔봉이 옳다고 했다. 반면 해남군청에서는 옛적에 정상에 있는 봉수대에서 통신수단으로 불을 쓴 봉우리라는 전라도 방언에 따라 불썬봉이라 했단다. 필자의 생각에도 달마대사의 거룩한 뜻을 기리는 뜻에서 두 분의 의견이 옳을 성싶다.
아무튼 해남군청, 미황사 주지, 송지 달마산악회를 비롯한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해서 이정표를 올바르게 세워줄 것을 기대한다.
산줄기를 고찰해보면 호남정맥 국사봉과 삼계봉 사이에서 서쪽으로 가지 친 땅끝기맥이 선왕산, 차일봉, 월출산, 도갑산, 별뫼산, 두륜산, 대둔산을 거쳐 달마산을 일구고, 사자봉(110m) 땅끝에서 여맥을 다한다. 혹자들은 일제가 왜곡시킨 지리를 금과옥조로 삼아 소백산맥에서 뻗어온 산줄기로 남해를 거쳐 일본까지 이어진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분명 잘못임을 밝혀둔다.
정상에서 조망은 북쪽을 제외한 삼면의 바다가 푸른 물결로 넘실대며, 북쪽은 주작산과 병풍산, 북동쪽은 천관산, 동쪽은 완도 백운봉과 상황봉, 서쪽은 진도 첨찰산과 여귀산, 남쪽은 도솔봉과 사자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이 한눈에 잡힌다.
이번 산행은 큰 산을 뜻하는 전주 한뫼산악회(회장 이창재)와 남녘으로 봄나들이를 겸해 제1코스를 답사했다. 제2코스는 송지면에서 고향 후배들과 송지 달마산악회와 마라톤동호회를 맡아 고향사랑운동을 펼치며 달마산에 안내판과 이정표를 설치한 김재연 회장의 안내를 받아 답사했다.
미황사 주차장에 닿자 사찰을 에워싸고 있는 달마산 암봉들이 병풍처럼 눈앞에 다가왔다. 한뫼산악회 회원들이 최봉진 재무의 구령에 맞춰 준비운동을 마친 뒤 이영기 등반대장이 선두에 서고 후미 리더는 손병조 총무가 맡았다. 호젓한 꽃망울을 터트리며 봄소식을 전해주는 동백숲으로 오르니 산새소리가 정겹고 산죽과 잡목들이 산꾼을 맞는다.
15분쯤이면 갈림길을 지나 헬기장에 닿는다. 동쪽에 우뚝 솟은 암봉들이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동물들의 형상이다. 급경사 바윗길을 지나 전망대 바위에 서서 남해바다를 바라보니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산꾼을 유혹하고,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이마에 솟은 땀방울을 식혀준다. 서쪽으로 미황사와 들녘, 그리고 바다가 어우러진 한 폭의 동양화를 연출한다.
한바탕 오름길과 씨름하다 보면 어느새 달마봉이다(미황사 주차장에서 50분 거리). 원평에서 온 여자회원들이 전주 모악산보다 산행이 짧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온고을산악회 이완귀 회장이 문바위로 가는 암벽에서 고생 좀 할 거라며 껄껄 웃는다.
정상에는 송지 달마산악회에서 보수한 봉수대 돌탑과 안내판, 달마봉과 불썬봉이란 두 개의 표지석이 마치 부부 싸움한 뒤 토라진 것처럼 등 돌리고 서 있다. 조망이 훌륭해서 주변 산과 바다가 한눈에 잡히고 가슴이 후련하다. 봉수대 뒤 북쪽 관음봉 암릉은 송촌으로 가는 길이고, 남쪽으로 이어지는 암릉은 도솔봉 코스다.
달마봉에서 문(門)바위 지대로 향하는 암릉은 오금을 저리게 한다. 밧줄에 의지하여 거미처럼 암벽을 오르내리노라면 마치 유격훈련을 하는 군인 같다. 수많은 등산객 때문에 정체현상이 극심해서 이곳에도 신호등을 설치해야 할 모양이다. 그래도 회원들은 새치기를 하지 않고 힘들게 오르는 사람에게 길을 양보하고 부축해주는 미덕과 쓰레기까지 줍는 따뜻한 가슴을 가졌다.
문바위 위쪽 너럭바위에서 서울 화요산우회 카페지기를 하다가 전주로 이사온 조동환씨와 산이 좋아 산행을 즐긴다는 조은숙씨가 달마산의 기암괴석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느긋하게 오찬을 즐기고 전망바위에 올라서니 망망대해에 떠있는 섬과 파도가 너울너울 춤추는 바다, 파란 하늘에 뭉게뭉게 떠있는 흰 구름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이 눈앞에 펼쳐졌다.
문바위는 임신부나 뚱뚱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곳이라 힘이 든다. 비탈길에 외롭게 서 있는 안내판이 도솔봉 7km, 금샘 1.1km를 알려준다. 개구멍바위를 지나면 서쪽 미황사 지름길을 만난다. 두 번째 넓은 갈림길에서 남쪽은 도솔봉 가는 길이고, 서쪽으로 내려서면 마황사 부도전 가는 길이다(문바위에서 25분 거리).
바람이 얼마나 드셌으면 풀들이 남쪽으로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다. 잡목, 바위, 산죽이 어우러진 내림길에선 모두들 발걸음이 가볍다. 너덜길을 지나면 문태랑씨의 기차여행과 국제신문의 리본이 반갑게 맞는다. 동백나무숲과 낙엽이 쌓인 길을 내려가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단청을 하지 않은 미황사 대웅전이 달마산을 등지고 우뚝 서있다. 안내판을 세우면 될 것을 나무마다 철사로 등산로를 알리는 표지판을 매달아서 수목장생에 지장을 주고 있어 안타깝다.
고즈넉한 사찰에 웬 기계톱 소리가 요란해서 설펴보니 불사 중이다. 모든 게 수작업이 아닌 기계의 힘에 의지하고 있었다. 불현듯 유년시절에 대목수가 한옥을 건축하며 수작업으로 재목을 다듬던 연장소리가 그리워지는 건 왠지 모르겠다. 인터뷰가 끝난 뒤 주지 스님 왈 “등산객님들 제발 주차장과 등산로에 쓰레기 좀 버리지 마소!”
제2코스 답사하는 날. 송촌 마을에 송지 달마산악회가 세운 안내판과 창고에 붙은 리본을 보고 걸으면 임도와 야산, 호수를 만나게 된다. 마을 앞에서 좌측의 개천과 너덜길과 대나무와 참나무숲을 지나면 임도 우측에 리본이 있는 곳이 산행 들머리다.
송림을 지나 너덜 삼거리(송촌에서 30분 거리)에서 우측으로 오르면 돌들이 마구 흘러내리는 급경사 너덜과 씨름해야 한다. 능선 사거리에 올라서면 달마산 암릉이 한눈에 잡히고 관음봉과 몇 개의 암봉을 거치면 달마산 정상 봉수대가 반겨준다(송촌에서 1시간50분 거리).
문바위, 개구멍바위, 미황사 하산 갈림길을 지나 산죽길, 나무계단, 진달래군락, 억새밭을 지나면 어느덧 도솔봉 3km, 미황사 2.5km를 알려주는 하숫골재 안내판 앞에 선다. 곧이어 서쪽으로 달마산 암릉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떡봉(정상에서 2시간 거리)에 닿으면 정상 도솔봉 2km를 알리는 안내판이 반갑다.
옹달샘을 알리는 삼거리를 지나면 도솔봉은 군부대 송신시설물이 깔고 앉아 진입할 수 없어 우회해서 군부대 정문에 닿는다(떡봉에서 1시간 거리). 임도를 따라 하산을 서두르면 좌측은 영전리로 가는 길을 지나 20분쯤이면 좌측으로 땅끝 사자봉을 가는 리본이 손을 흔든다. 25분쯤 걸으면 약수터가 있는 주차장에 닿는다.
글·사진= 김정길 전북산사랑회 회장
산행안내
제1코스 미황사~달마봉~문바위~사자봉바위~미황사 <4.3km, 2시간30분 소요>
제2코스 송촌리~관음봉~달마봉~(2.5km)~하숫골재~떡봉~(2.0km)~도솔봉~(1.2km)~마봉리 주차장 <10.2km, 6시간30분 소요>
교통(이하 지역번호 061)
광주→해남 직행직통 수시 운행. 1시간30분 소요.
해남→서정리(미황사) 군내버스(534-0881)가 1일 5회 운행(06:10, 08:20, 10:50, 14.05, 16:50).
해남→월송리(송촌) 군내버스가 1일 5회 운행(07:00, 09;10, 11;40, 14:55, 17:40)
송지면에서 택시 이용(533-8150).
자가용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서해안 고속도로~목포~영산호하구둑~영암·금호방조제~화원~문내~황산~고천암방조제~화산~송지(또는 현산) 순으로 드라이브.
현산면 송촌 마을에 주차장과 등산로 안내판이 있고, 미황사 방면에 대형 주차장이 있으며, 도솔봉 입구에 약수터와 대형 주차장이 있다.
숙식
중앙식당(533-2146) 송지면 소재지에 있는 이 식당은 백반, 곰탕, 국밥, 육개장 등을 1인분 5,000원에 맛볼 수 있다.
호수산장(535-4442) 오리와 토종닭 35,000원.
파도횟집(533~6440) 땅끝마을 보길도 선창가에 자리 잡은 이곳에서는 싱싱한 광어, 농어, 우럭 등 회를 4인 기준 60,000~80,000원에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