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바둑 “날자, 날자꾸나”

중국 바둑의 고공 비행이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주 끝난 제10회 LG배서 구리(古力) 신(新) 九단이 우승함으로써 6개 메이저급 국제대회 우승자 분포는 한국 3, 중국 3명으로 양국이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그래픽 참조>. 지난해 3월 창하오(常昊)의 잉씨배 제패로 시작된 중국의 공세는 올해 뤄시허(羅洗河)와 구리의 삼성화재배 및 LG배 제패로 절정을 이루고 있다. 중국으로선 지난 10년간 마샤오춘(馬曉春·2회)과 위빈(兪斌)이 메이저 3회 우승에 그쳤던 실적을 단 13개월 만에 재현한 셈.
이로써 지난 10년 남짓 한국이 주도해 왔던 국제 바둑계는 한·중 양국의 정면 대결장으로 변모했다. 국제 대회 23연속 우승(2000년 8월~2003년 3월)을 기록하며, 2003년 초 한때 모든 국제 기전을 독점하기도 했던 한국은 올 들어 한 개의 ‘금메달’도 따내지 못하고 있다. 국제 점유율 5할대 추락은 최근 10년 동안 상상도 못하던 일. 이 같은 ‘생태계 변화’의 원인은 모두 중국의 급부상과 연결돼 있다.
이번 LG배는 중국 기사끼리의 결승전이란 점 외에 연령 측면에서도 눈길을 끈다. 23세의 구리는 20대 초반 스타들로 구성된 소위 ‘10소호(小虎) 그룹의 리더이고, 그와 풀 세트 접전을 펼친 16세의 천야오예(陳耀燁)는 ‘소표(小豹)’란 애칭의 10대 중반 최연소 유망주 군(群)에 속해 있다. ‘6소룡(小龍)’ 멤버인 창하오와 뤄시허에 이어 차세대 그룹들이 차곡차곡 바통을 이어받고 있다는 뜻이다. 몇 년째 이창호 이세돌에게만 집중적으로 의존해 온 한국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천야오예의 경우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번 대회서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이미 세계 최정상권에 근접했음을 유감없이 보여주었기 때문. 중국엔 천야오예와 어깨를 견주는 리저(李喆·17) 구링이(古靈益·15) 저우루이양(周睿羊·15) 등 앳된 예비스타들이 즐비하다. 중국 특유의 바둑 영재 스쿨 격인 국가 소년대 출신인 이들은 아직 ‘치어(稚魚)’로만 간주돼 왔으나 눈 깜짝할 새 세계 무대 결승까지 진격했다. 같은 또래들의 스타덤 진입이 지지부진한 한국으로선 꽤 충격적이다.
‘공한증(恐韓症)’ 소리까지 들으며 외곽에서 겉돌던 중국 바둑은 이제 후지쓰배와 도요타덴소배를 제외한 모든 메이저 타이틀에 첫 발자국을 찍었다. 되찾은 자신감으로 본격적인 영토 확장에 나설 기세다. 최규병 九단은 한·중 양국 경쟁과 관련해 “지금은 박빙이지만 앞날은 밝지 않다”는 말로 이미 역전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음을 인정했다. 각 분야에서 한국 경제 성장의 방해 변수로 등장 중인 중국. 바둑도 어느새 결코 안심할 수 없는 단계까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