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뱀' 강혜정, '잡히지 않는' 캐릭터

강혜정은 자신의 성형설에 대해 펄쩍 뛰었다. 본인은 발치수술과 치열교정의 여파가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수술 전에 촬영을 마친 '도마뱀'(감독 강지은ㆍ제작 영화사 아침ㆍ27일 개봉)에서도 그의 모습은 전과 다르다. 친부와 잠자리를 함께 하고(올드보이), 순진무구한 광기의 웃음을 짓고(웰컴 투 동막골), "나랑 자려면 50만원 내요"라고 당돌하게 말하는(연애의 목적) 강혜정은 그 동안 트레이드마크였던 비일상적 캐릭터로부터 한층 현실 속으로 가까이 와 있다. "순정 멜로의 역할은 제 또래 여성 연기자라면 누구나 맡고 싶어 하겠죠. 하지만 제가 그것 때문에 영화를 선택한 건 아니에요. 오히려 캐릭터에 숨어있는 비정상성이 마음에 끌린 거죠." '도마뱀'은 강혜정의 말처럼 남녀의 순수한 사랑을 색다른 시각으로 조리했다. 도마뱀이란 타이틀은 잡으려고 하면 꼬리를 끊고 달아나는 아리(강혜정)를 가리킨다. 그는 어릴 때 만난 조강(조승우)의 극진한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자신이 간직한 비밀(강혜정은 이를 미리 밝히지 말라고 당부했다) 때문에 조강의 곁을 맴돌다 달아나기를 반복한다.

"시나리오를 보고 감이 잘 안 왔어요. '한 남자를 진정 사랑하지만 사랑하면 안되는 상황을 어떻게 형상화할까.' 하지만 배우로서 느낌이 있잖아요. 도전정신 같은 거. 아, 이건 내 배역이다. '그 분'이 오신 거예요." 촬영할 때도 내내 고민됐다. 해결책은 남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었다. '상대가 내 비밀을 알면 얼마나 큰 상처를 받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어느 정도 방향이 잡혔다. "조강은 아리를 만나는 동안 지극정성으로 자신을 바쳐요. 외계에서 왔다느니, 자기를 만지면 저주가 내린다느니, 아리가 말하는 허무맹랑한 얘기를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주죠. 그런 남자는 현실에 잘 없죠. 하지만 여성이라면 누구나 그런 사랑을 꿈꿀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로 그런 사랑을 기대하죠. 그런 점에서 우리 영화는 여성을 위한 판타지에요." 그 상대가 다름 아닌 연인 조승우라서 감정 이입이 훨씬 수월했을까.

실제 연인으로서 조승우가 조강의 역할을 해주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최근 결별설을 의식한 듯 강혜정의 표정은 약간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내 밝아진다. 둘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당당하다고 한다. "(승우)오빠는 요…(잠깐 뜸을 들이다가)…그렇죠. 조강 같은 면이 많아요. 그런데 실생활의 모습이 영화에 도움이 되진 않았어요. 오히려 '배우 조승우'의 놀라운 집중력이 제게 많은 영감을 줬어요. 가령 키스를 하는 장면에서 감정 조절이 쉽지 않았는데 오빠가 가이드하는 대로 따르니 장면이 확 살더라구요." 강혜정은 내달 크랭크인하게 될 '허브'에서 정신지체 장애를 앓는 연기를 펼친다. 또 다시 비일상의 배역. '작품은 운명같은 인연'이라는 스스로의 표현대로 강혜정에겐 정해진 배우의 길이 따로 있는 것일까. 다소 헬쑥해진 얼굴 속에 개성을 빚는 열망이 반짝인다. (스포츠조선 이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