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얼굴로도 착한 연기 됩디다”

영화 ‘맨발의 기봉이’(27일 개봉) 때문에 그를 만났지만, 정작 인터뷰 시간 동안 가장 많이 나왔던 단어는 ‘신앙’과 ‘봉사’였다(그의 어머니는 매일 하루 여섯 시간 기도를 쉬지 않으며, 큰 누나는 예언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 자신도, 뇌성마비 장애아동 목욕봉사 3년째. 요즘 영화를 같이 찍는 권오중과는 아침마다 성경구절을 문자메시지로 교환한다고 했다).
나중에는 너무 궤도를 벗어난 게 아닐까 싶어, “이렇게 신앙 이야기만 하면 영화사측에서 싫어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큰 코를 실룩거리며 그가 파안대소했다. 얼마 전 일본에서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동경의 한 기자회견장에서 지금보다 더 ‘선교’에 전념했더니, 자신을 초청한 주최측 일본인 사장이 “제발 그만 좀 해 달라”고 했다. 그는 즉각 “그렇다면 받은 돈을 돌려주고, 나도 돌아가겠다”고 일침을 놨고, 일본인 사장은 “사실은 나도 기독교 신자인데, 잘못했다”고 사과했다고 한다.

조금 장황하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이 사례를 인용한 이유는, 어쩌면 ‘배우 신현준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가 조금은 편협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그 대부분의 책임은 사실 본인에게 있다. ‘장군의 아들’(1990)의 야비한 하야시로 충무로에 발을 들여 놓은 이후, ‘은행나무 침대’(1996)의 무서운 황장군이건 ‘무영검’(2005)의 비정한 군화평이건, 그는 그러잖아도 사납게 생긴 눈을 부라리며 별로 성공적이지 못한 비장미와 잔혹미를 재생산했다. ‘가문의 위기’(2005)에서 코미디 연기를 할 때도 ‘조폭 두목’으로서의 카리스마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못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맨발의 기봉이’에서 신현준은 소년의 마음을 가진 중년 노총각으로 ‘성공적 퇴행’을 보여준다. 그 캐릭터가 생각보다 설득력 있다. 열병을 앓아 여덟 살에서 정신적 성장이 멈춘 마흔 살 기봉씨는 마을 사람들에게 ‘영구’ 취급을 받지만, 노모의 틀니를 맞춰주기 위해 맨발로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는 효자. 그는 기봉씨를 “내가 정말 표현하고 싶은 인물의 스타트, 계주의 첫 주자”라고 표현했다.
‘맨발의 기봉이’는 사실 탄생의 기원부터 신현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KBS 다큐 ‘인간극장’을 보던 그는 “신발 닳는 게 아까워 맨발로 뛰어다니던 기봉씨”를 보며 눈물 흘렸고, 영화 ‘비천무’를 찍으며 친구가 된 권수경 감독(당시 조감독)에게 연출을 제안했다. 그는 실제 인물 기봉씨에게서 “마흔이 가질 수 없는 웃음”을 봤고,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슬픈 영화, 사람냄새 풀풀 나는 휴먼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는 꿈이 이뤄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왜 뛰냐”는 질문을 받은 기봉씨가 “내가 뛰야 돈 벌고, 울 엄마 도와주고”라고 대답하는 다큐 장면을 보고는 펑펑 울었다고 했다(그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다시 눈물이 고였다).
휴머니티를 너무 강조하다보면, 자칫 ‘가식’으로 생각하는 관객들도 있지 않겠냐는 우려를 던졌다.
그는 “내 친구 중에 프랑켄슈타인처럼 생긴 음대 교수가 있다”는 말로 대답을 시작했다. “그 친구가 피아노를 치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요. 겉으로 보는 이미지와는 딴판이죠.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듣고, 혹은 외국인처럼 생긴 내 얼굴 때문에, 또 눈 무섭게 생겼다고, 코 굵다고, 편견을 가지지는 말았으면 좋겠어요. 전에는 이런 말도 오해할까봐 못했지만, 마흔이 되고 나니 그런 것도 편해져서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