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 "훌륭한 조연은 오버하지 않는다"

비중이 작아도 주어진 역할을 100% 이상 '뽑아먹은' 배우가 있다. 이기영이 그렇다. '말아톤'의 맘 따뜻한 육상코치, '달콤한 인생'의 냉혹한 킬러 등 그는 TV와 영화를 오가며 개성으로 가득한 캐릭터를 빚었다. 지난주 개봉한 '마이캡틴 김대출'(감독 송창수ㆍ제작 진인사필름)에서 이기영은 비열한 형사 역을 맡아 또 한 번 또렷한 인상을 남긴다. 그를 만나 조연의 풍년 시대에도 존재감을 잃지 않는 비결을 물었다. -영화를 보니 힘을 좀 뺀 거 같다 ▶원래 시나리오가 그렇다. 내가 나서면 극 흐름이 깨지고 주연이 죽는다. 유일한 악역으로 긴장을 유발해야 하는데 잠깐잠깐 등장하기 때문에 캐릭터를 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튀지 않으려고 신경을 썼다. -조연만의 철학이 있나 ▶역할에 충실하면 그뿐이다. 다만, 영화 전체를 읽는 눈이 중요하다. 어설픈 조연은 자신을 돋보이고자 곧잘 '오버'한다. 훌륭한 조연은 다른 배우의 몫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자기 역할로부터 무엇을 '따먹을 수 있는가'를 생각한다. -또 악역인데 ▶그렇게 됐다. 한 번 두 번 악역을 소화하다 보니 이미지가 굳어졌나? 나쁘진 않은데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변신이 필요하다. 우선 두 딸(7세, 11세)의 보는 눈이 달라졌다. 작품 속과 실제 아버지 모습을 비교해서 곤란한 경우가 많다. 둘째는 연기의 폭이 한정되는 느낌이다. -망가지는 코믹스타일을 기대해도 되나 ▶실제로 연극이나 뮤지컬에서는 코미디를 많이 했다. 어떤 때는 막판의 찡한 감동보다 극 중간 중간 극장이 떠나갈 듯 터지는 웃음에 더 희열을 느끼곤 한다. (시트콤 출연 여부를 묻자) 절대 'No'다. 지금처럼 가수나 모델이 뒤섞인 캐스팅 시스템에는 합류하고 싶지 않다. -'배우'라는 엘리트 의식인가 ▶그런 건 없다. 하지만 배우를 아무나 할 수 있다란 생각에는 반대다. 다른 장르에서 어느 정도 뜨면 '이젠 연기나 해볼까' 한다. TV를 보라. 연기는커녕 발성 훈련이 안 돼 장단음도 구분을 못 한다. 그런데도 시청률이 높게 나오니 시청자 눈이 낮아지는 셈이다. -배우가 된 계기는 ▶학창시절엔 운동선수가 될 줄 알았다.(그는 만능 스포츠맨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고2 때 내성적이던 형(탤런트 이효정)이 갑자기 연극영화과 합격통지서를 받아들고 왔다. 그게 그렇게 멋있게 보였나 보다. -향후 활동 계획은 ▶얼마 전 차태현 주연의 영화 '바보'를 끝마쳤다. 지금은 문근영, 김주혁 주연의 '사랑 따윈 필요 없어'를 찍고 있다. 사채업자 역인데 갈등을 조성하지만 완전히 악역은 아니다. 내달에는 재일교포 최양일 감독의 '더블캐스팅' 촬영에 들어간다. 확실히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출연작 중 가장 비중이 크다. 드라마는 당분간 못할 듯하다. (스포츠조선 이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