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머' 102분 동안의 따뜻함

영화 '드리머'(존 거틴즈 감독).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감동적이지. 오랜만에 가슴 따뜻한 화면을 만났지. 성공-실패-역경-극복-성공으로 이어지는 휴먼드라마의 공식을 잘 따른 영화이긴 하지만, 102분 동안 참으로 행복했어. 그것은 가족에 관한 아주 아름다운 영화였기 때문이지. 우리에겐 가정의 달 같은 게 있지. 하지만 가족이란 무슨 날 혹은 달을 정해놓고 기념하기엔 너무나 소중하지. '드리머'는 가족 드라마로 온 가족이 함께 보면 영화 이상의 가치를 가슴에 안고 극장문을 나서게 될 거야.　그동안 문학작품이나 영화, 공연물에서 동물과 인간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은 작품은 수없이 많았지. 희랍신화, 이솝우화는 물론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나 만화까지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 아름다운 작품들은 무궁무진하지. 예술작품 속 귀엽고 인간적인 동물들은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캐릭터이지. 말 역시 인간과 인연이 깊은 동물 중 하나지. 예술 작품 속에서도 감동적인 경우가 많지. 실험극장의 대표작인 피터쉐퍼의 '에쿠스', 극단 유의 '홀스또메르'는 말을 소재로 삼거나 혹은 인간에 비유한 한 좋은 작품들이지.　특히 '홀스또메르'(톨스토이 작, 마르크 로조프스키 각색)는 말 이야기를 다룬 명품 연극. 얼룩배기라는 이유로 멸시당하다 백작을 만나 명마로 탄생, 화려한 인생을 살다 사고로 다리가 부러져 삶을 전전하다 자신이 태어난 마구간으로 돌아가는 말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 홀스또메르역을 맡아 명연기를 펼쳤던 유인촌이 극중에서 마지막 죽기 전 토해내는 "중후하게 늙을 수도 있고, 추하게 늙을 수도 있고, 때로는 가련하게 늙을 수도 있다"는 교훈은 극장을 울렸지. 말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이야기를 다룬 가장 슬픈 연극일거야. 홀스또메르는 정말 슬픈 말이지. 슬프고도 슬픈 말이지. 영화 '드리머'역시 명마 소냐도르에 관한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지.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인 소냐도르는 경주에서 다리를 다쳐 도살 직전에 몰리지. 그러나 사육사에 의해 살아나게 되고 그의 가족들의 사람으로 다시 경주에서 우승하는 대역사를 만들지. 그 과정 속에, 할아버지와 아버지, 할아버지와 손녀, 아버지와 딸,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든 관계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온전하게 복원되지. 인간과 말이 모두 다시 태어나는 셈이지. 아버지가 해고되는 막다른 지점의 가족, 경주 중 다리가 부러지는 말(소냐도르). 두 비극이 충돌하지. 비극 대 비극의 충돌. 그 끝에 보는 감동! 예술은 때론 비극의 극대화를 통해 감동을 전하지. 그런데 문제는 그 비극이 화면 밖으로 줄줄 새지 않고 절제되어 있다는 점이 이 영화의 미덕이지. 그런 점에서 참으로 좋은 영화야. 구질구질하게 슬픔을 넘치지 않게 조절하고, 인상깊은 회화적 그림을 만들어낸 존 거틴즈 감독의 연출력은 빛났어. 배우들의 연기는 두말할 것도 없지. '아이 엠 샘'에서 관객을 놀라게 한 다코다 패닝은 사람을 아주 녹여버려. 그는 아역배우가 아니라 위대한 배우였어. 당돌하고 야무진 연기야말로 이 영화의 백미지. 여기에 커트 러셀은 따뜻하고 풋풋한 이미지의 아버지를, '포 더 굿 타임스'의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은 온화한 할아버지 그 자체였어. 이 영화는 한마디로 '부자유친'의 서양식 표현이야. 부자유친은 동서고금의 진리인가 봐. 드리머는 몽상가라기보다는 꿈꾸는 가족의 이야기지. 가족 간의 화해와 사랑. 그 갈등 해소의 공간에 놓인 말. 그 말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위대한 조화를 노래하는 거지. 영화 속에서 다코타 패딩은 말 소냐도르에게 노래하지. "넌 위대한 챔피언. 네가 달리면 땅이 울리고 하늘이 열리지. 승리는 네 것. 우승컵을 안은 나는 네 등을 꽃다발로 장식하네" 이 영화를 본 모든 관객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챔피언이 되었으면 좋겠어. 자신에게 닥쳐오는 비바람을 뚫고 진정한 승리자가 되길…. (스포츠조선 엔터테인먼트부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