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승원, 몸짱-멋 버리고 '슬픈연가'

웃기를 기대한 관객에게 그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몇 년 새 한국 영화 최고의 코믹 캐릭터로 성장한 차승원. 지난해 '혈의누'와 '박수칠 때 떠나라'로 연기 변신을 시도했던 그가 '국경의 남쪽'(감독 안판석ㆍ제작 싸이더스FNH)에선 실험에 가까운 도전을 했다. 애인을 북에 두고 내려온 새터민 김선호는 관객에게도, 배우 자신에게도 낯설다. 사람들은 그것을 차승원 최초의 멜로 배역이라고 정의했다. "글쎄요." 차승원은 그러한 규정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

"차승원 표 멜로라고 하면 좀 난감해요. 연기는 역할이 만드는 거고 제가 그 역을 택한 이상 그런 연기가 나올 수밖에 없거든요. 제가 이제껏 연기한 배역 중 가장 신선한 것임엔 틀림없어요. 그건 '선호'가 전작에 비하면 캐릭터가 거의 없기 때문에 톤이 전혀 달랐을 뿐이에요." 극 중 선호는 북쪽 애인 연화(조이진)가 결혼했다는 소식에 낙담한 뒤 남에서 새 반려자를 찾는다. 그런데 그만 연화가 선호를 찾아 혈혈단신 탈북하는 바람에 갈등이 생긴다. "분단의 산물, 지극히 한국적인 상황이 마음에 들었어요. 사실로 받아들이기 싫어도 현존할 수밖에 없는 사실에 공감이 갔죠." 차승원은 그저 '그저 스토리에 몸을 맡기면 됐다'고 했다. 하지만 어떤 배우가 그저 스토리에만 의존할까. 그는 선호로 변신하기 위해 12kg을 감량하고 몸짱의 멋과 매력을 버렸다. 집에서도 북한말을 쓸 정도로 수개월간 북한 사투리를 입에 달고 살았고, 극중 호른 주자로서 그 불기 어렵다는 악기를 연습해 직접 불었다.

영화에 관한 투혼은 자연스럽게 TV오락프로에 선보인 '몸짱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약골 혹은 비만인 개그맨을 수련시켜 '정상' 체형을 만들어주는 이 프로그램은 영화 개봉 전 8주간 진행된 초유의 기획. 차승원이 영화 홍보를 위해 직접 아이디어를 내 화제를 모았다. "영화 개봉 직전에 배우들이 TV에 나와요. 그럼 너무 갑작스럽잖아요. 비판도 많잖아요. 나름대로 시청자들에게 제 얼굴을 충분히 각인시켜주려고 기획했던 거예요. 결국 배우 호감도는 영화 선택 기준에 중요한 요소잖아요." 그 진정성 덕분에 사람들은 그 프로젝트를 밉게 보지 않았다. '영화가 떠야 배우가 뜬다'는 철저한 홍보 철학은 차승원을 제작사가 가장 선호하는 배우로 만드는 데 큰 몫을 했다. 다시 얘기를 돌려보자. 주위에서 말하듯 이번 영화가 과연 차승원에게 '터닝 포인트'가 됐을까? 판단은 독자 몫. 하지만 배우 본인에게 듣는 답안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터닝 포인트요? 그럼 다시 앞으로 돌아가게요?(웃음) 제가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지점에 변화가 있는 것뿐이에요. 멜로와 코믹을 양분하지 않고 중용을 지키려는 의도도 물론 반영됐지만. 내일 또 선호를 연기하더라도 예전과 다른, 좀 더 나아진 모습. 그게 제가 바라는 배우로서의 저의 모습이에요." (스포츠조선 이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