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LG배 세계기왕전] 가랑비…흙탕물

〈제11보〉(162~183)=잽(jab) 열 대는 강력한 훅(hook) 한 방 이상의 효과가 있다. 가랑비도 오랜 시간 맞으면 흠뻑 옷이 젖는 법. 온몸이 축축해진 뒤에 놀라서 뛰다 보면 미끄러져 흙탕물에 뒹굴기도 한다. 구리로선 비극의 보(譜). 일단 162는 용케 실족(失足)을 모면한 수다. 흑 때 ‘가’면 흑 162, 백 ‘나’, 흑 ‘다’로 패를 피할 수 없다.
164부터 168까지 상변을 정리한 수순이 패착. 173을 당해선 마침내 역전이다. 참고도의 진행이었으면 아직도 미세하나마 백승(白勝)이 유력했다는 최규병 九단의 결론. 실전에서 백이 얻은 상변 소득은 4집, 우변 손실은 7집 가량이다. 흑이 178까지 선수하고 179로 때려내자 백은 기어코 흙탕물에 처박히는 신세가 됐다.
164에 7분, 176에 3분을 쓰며 뒤늦게 고심해봤지만 빗줄기는 이미 장대비로 변해 있다. 세상 모든 일은 한 순간에 뒤바뀐다. 183도 ‘라’의 약점 때문에 아픈 곳. 구리의 눈길이 상중앙 흑 대마에 꽂혔다. 그렇다! 저 흑을 잡는 수가 있다면 재역전도 가능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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