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LG배 패권탈환 ‘시동’

◆“대국 얘기는 참아 주세요.”
출전 기사들은 점심시간 때 대화 내용에 대한 규제를 받는다. 진행 중인 바둑의 수(手)나 형세와 관련해 동료들과 의견을 교환함으로써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경우가 있다는 프로들의 지적에 따른 조치다. 인터넷 해설창과 검토 기보 등이 다채롭게 깔려 있는 검토실 출입도 불가능해진다. 일부 외국 기사들이 보여주었던 단정치 못한 복장 또한 규제 대상이다. 대국과 관련해선 종전 5번기로 펼쳐졌던 결승전이 3번기로 줄어들며, 4강전과 8강전은 분리 거행키로 했다.

32명의 전사(戰士)가 새롭게 스타트라인에 섰다. 우승 상금만 2억5000만원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LG배 세계기왕전(조선일보 주최)의 열한 번째 출발 총성이 15일 안국동의 호텔 서머셋 팰리스에서 울리는 것. 이에 앞서 14일엔 대진 추첨 등 대회 전야제가 거행되고 17일엔 16강이 겨루는 2회전으로 이어져 1년간의 레이스가 본격화된다. 개막에 앞서 올해 대회부터 달라진 점과 관전 포인트 등을 정리한다.
◆한국의 반격 전초기지 될까.
올해부터는 유럽, 미주 대표 등 ‘들러리’가 배제된 채 동양 4개국 최정예들로만 대회가 치러진다. 출전자 수는 한국 13, 중국 11, 일본 6, 대만 2명의 황금 비율. 초점은 역시 한국의 ‘부활’ 여부다. 한국은 과거 10년 동안 이 대회에서 6회나 우승했으나 최근 2년 연속 패권이 외국으로 넘어갔다. 특히 올 들어 한국 바둑의 부진은 심각하다. 상반기에 벌어진 6개 국제대회에서 중국이 5개(삼성화재배 정관장배 강원랜드배 LG배 CSK배), 일본은 1개(농심배)를 제패하는 사이 한국만 무관(無冠)에 머물고 있다. 올해 LG배는 과연 대 반격의 전초기지가 될 수 있을까.
◆올해 우승자는 누구?
한국에선 대회 최다 우승(4회)의 이창호, 현역 세계 2관왕인 이세돌이 지명도 면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들. 여기에 박영훈 최철한 등 국내 ‘4천왕’ 멤버들이 가세하며 첫 패권을 겨냥 중이다. 중국은 전년도 우승자인 구리(古力)가 요즘 기세로 볼 때 대회 2연패도 노릴 만하다. 창하오(常昊) 저우허양(周鶴洋) 후야오위(胡耀宇) 왕시(王檄) 등 20~30대 청소년 기사들도 나이에 비해 경험이 풍부한 편. 일본은 1인자 야마시타(山下敬吾) 등 6명이 출사표를 던졌으나 중량감이 떨어진다.
최고령 조훈현(53), 조치훈(50), 그리고 89년생 동갑인 최연소 진시영 천야오예 등의 활약상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창 성장 중인 각국 주니어들에 의해 깜짝 쇼가 펼쳐질 가능성도 있다. 윤준상(19) 김동희(21) 왕레이(王雷·20) 황이쭈(黃翊祖·18) 등이 ‘태풍의 눈’ 후보들. 바둑은 이제 어느 면에선 국가보다는 연령대(帶) 간의 격전장으로 변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