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LG배 세계기왕전] 미뤄진 축배

〈총보〉(1~281)=내용과 승패는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 점은 바둑이 예술이냐 승부냐 라는 논쟁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중반까지는 명불허전(名不虛傳), 구리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보여준 ‘백의 명국’이었다. 특히 62부터 88까지의 처리는 국내 검토진 모두를 탄복시킬 만큼 현란한 솜씨. 72만 해도 용의주도한 점으로, 참고도 1은 16까지 되치기 당한다.
하지만 우승이 눈 앞에 어른거리면서 그의 심안(心眼)도 흐려졌다. 막판 136 142 154 164의 연속 실족으로 백은 딴 사람이라도 된 듯 헤매다가 2집 반을 졌고 축배(祝杯)도 미뤄졌다. 한 편으로 천야오예의 침착한 추격도 인상적이었다. 바둑이 끝난 후 승자인 16세 소년도 “내용이 불만스럽다”고 했다. 둘은 똑같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약 4분 간 손으로만 복기(復棋)를 나눈 뒤 일어섰다. 구리가 쉽게 이겼던 1, 2국 때와 비교해 반의 반도 안 되는 시간. 두 기사의 속마음은 이미 다음 판을 준비하고 있었다. (209 215 221 227 233 239 247 255 261 267…203, 212 218 224 230 236 244 252 258 264 269…202, 257…42, 280…127, 281수 끝 흑 2집 반 승, 소비시간 백 2시간 22분, 흑 2시간 57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