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을 살다가 예기치 않게 복권에 당첨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때가 있지. 그게 꼭 돈으로 환산되는 물질이 아닌 식은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거나, 소원했던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감성의 선물일지라도.
우리는 늘, 항상, 가까이에서 삶을 에워싸고 있는 사물들에 대해 하찮거나, 사소하거나, 귀찮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 그러나 그러한 것들의 존재의 부피를 인식하고 그 주변을 둘러보는 것, 그것처럼 소중한 일도 없을 것이야.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감독 권형진, 제작 싸이더스 FNH)는 결손가정의 피아노 신동 경민과 살리에르 콤플렉스를 지닌 피아노 선생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지. 가족과 가정으로부터 상처를 지닌 소년과 유학도 못가고 성공도 못한 변두리 호로비츠가 되고 싶었던 피아노 학원의 선생, 이들 사제간의 우정과 사랑이 참 끈끈하지. 사람은 사람을 통해서 참 많은 것을 잃기도 하지만, 사람을 통해서 새롭게 깨닫고 느끼고 살아갈 힘을 얻게 되지. 이 영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는 화려하지 않은 것들, 성공하지 못한 것들의 뒷모습을 진정성을 찬찬하게 읽어주지. 그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영화지.
그동안 '모짜르트' '레이 찰스'등 세계적인 명성을 지녔던 예술가들의 삶을 다룬 음악영화는 많았지만, '호로비츠를 위하여'처럼 평범 이하의 인물들을 등장시켜 감동적인 영화미학을 만어낸 영화는 드물었지.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가치가 크고 아름답지. 소박한 아름다움의 승리지.
호로비츠(1904-1989)는 극히 카리스마적인 존재였고 청중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조건을 완전히 갖추었던 피아니스트. 자유분방하게 종횡무진 건반을 누비는 10개의 손가락, 다이내믹하게 울려퍼지는 옥타브, 야만적인 악센트, 여린 선율에서 들릴 듯 말 듯 다가오지만 또렷하게 떠오르는 음악의 윤곽 등, 작곡자의 원래 의도는 온데간데 없이 호로비츠의 연주는 가히 그만의 독창성으로 유명하지.
이 영화는 피아노라는 매개를 통해 나 이외의 나, 나 이외의 너와 소통하고 세상과 교류하고 만나고 살아가는 휴먼 드라마지. 특히 부모를 잃고 불협화음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소년과 성공으로부터 멀어져 역시 불협화음적인 삶을 살아가는 피아노 선생이 만들어내는 하모니가 극장을 나온 뒤 오랜 여운을 남기지.
또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에 대해 노래하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를 꿈꾸다 변두리 피아노 학원선생으로 전락한 이후 엄정화의 변화, 부모님을 사고로 잃고 할머니마저 암으로 잃어버리고 피아노 학원에 다니다 입양된 후 피아니스트가 된 소년의 변화, 호로비츠를 공포의 해변으로 생각한 순진한 피자집 주인 박용우의 사랑과 예술에 대한 변화. 이처럼 이들의 삶과 현실의 작은 변화에 대한 힘을 저축하고 풀어내고 옥죄는 아름다운 큰힘을 지닌 영화지.
섹시미로 비춰진 엄정화와 처음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신의재의 연기호흡은 좋았어. 소년을 유학 보내고 난뒤 홀로남아 우는 엄정화의 연기는 올해의 명장면으로 뽑힐 만하지.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로 데뷔한 그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 '싱글즈'등에 출연했지. 이번 영화에서 변신한 그녀의 연기는 안정감이 있으며 절제속에 폭도 넓어졌으면 가벼움에 힘이 실렸어. 군더더기 없는 연기로 그의 진가를 발휘한 박용우의 연기는 영화에 맛을 더했지.
사람은 사람을 통해서 성숙해지고, 삶의 제대로 된 길을 인도받지. 영화 속 작은 공동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란 것을 느끼게 해주는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자신을 변화시키는 영화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어.
클라이막스에서 피아니스트 김정원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연주장면은 압권이었지. 우리영화의 영역을 확장하는, 영역을 변화시키는 수작이지. 누군가 그랬지. 좋은 영화는 보고 난 이후에 가슴 속에 남아있는 여운의 시간과 비례한다고.
(스포츠조선 박용재 기자)